국경 근처에서, 집을 말하다
이승호
1
꿈의 그 집에서는 내가 영원히 살지 못하네
나는 집에서 살 수 없으니까 수많은 집을 전전했으니까
저 새끼가 드디어 미쳐가는구나
유곽은 후미진 곳에 있고
성당은 높은 곳에 있어야 하네
그래야 장사가 되지
나는 쫓겨나 마땅하고
마루에서 몰래 쓰러져 자는 외삼촌과 같은 부류였으니까
집은 필요없어됴
모든 이에게 집이 있다면
모든 이에게 집이 없다면, 비극은 사라질까
예수회 신부는 소가 되어 쟁기를 걸고 헐떡이면서
밭을 간다
그는 동굴로 돌아와 쓰러진다, 쓰러진다
내가 그 아이의 눈빛과 마주쳤으니
나는 천국에서 도망친 자와 다름이 없구나 그는 흐느껴 울고 울다가
돌을 움켜쥔 채 피투성이로 싸우는 아이
나는 그 아이를 존엄성이라 불렀다
집을 위하여
모든 요설가를 제압하는 집의 사상이 있고
2
여기는 피레네의 어느 움막집인가
라인강 수풀 속에 잠든 나룻배인가
강촌휴게소에 내려 담배를 태우며
오후의 저 빛나는 새들을 바라본다
나는 또 국경 근처에 이르렀다
어찌 저 같은 자를 집으로 불러주셨습니까?
집을 파괴하는 짓 영원한 종교의 땅에서 집을
등지게 하는 것
숭고한 우리의 처소를
소굴과 연애 장소를 가시덩굴에 내맡기는 것
아이의 장난감들
잠이 들기 전 어머니의 달콤한 노래를 삭제한다는 것, 전쟁이
나는 집을 떠나네 시간보다 낯선 고장을 찾아서
청호반새
다시 반기지 않으리
나는 한 여인의 초상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개다 만 옷가지를 붙잡고 운다 그것 사물들을 그녀에게
붙들린 채로 함께 울었다
누구의 집 누구의 죽음이었을까
흐느낌과 바스락거림과 부산함이 섞여들었다
더 이상 울지 않은 울음소리가
그러나 꿈의 그 집에서는 아무래도 나를 찾을 수 없어
―시집 『국경 근처에서 집을 말하다』(들꽃,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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