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어머니와 아들 /이승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2. 12. 11:00
728x90

어머니와 아들 

 

이승호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셨다 

생떼를 부리고 간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들고 십 리 먼길을 걸어오셨다 

밭일을 하다 오셨는지 머리수건을 쓴 어머니는 

더없이 촌스러워보였다 

“여긴 왜 와, 창피하게” 

어머니는 말없이 도시락을 쥐여 주고 

발길을 돌려 가셨다 

열다섯 살, 철봉대가 뜨끈한 날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그날의 잘못을 빌지 못했다 

 

아들의 마음이 이제 이렇게 아픈데 

어머니는 얼마나 서글피 울며 가셨을까

 

어머니는 가끔 내 꿈속으로 찾아오신다

어머니, 저는 시를 쓰고 있어요

그래그래, 어머니는 연신 맞장구만 하신다

매번 꿈속에서 나는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한다

 

 

 

―시집 『국경 근처에서 집을 말하다』(들꽃,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