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눈사람 /임양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2. 12. 1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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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임양호

 

 

밤사이 누가 왔나 봐요

문밖이 수북하네요

하지 못해 빛났던 말들이

저렇게나 많은 양

 

어둠에 기댄 순결의 높이가

참 놀랍네요

그 기다랗던 밤에 잠도

오지 않았던 것은

소리 없이 오는 그대 발자국에

귀 기울이다

동짓날 새알심같이

마음만 웅크려 하얗게 동그래졌잖아요

 

이 계절이면 하나씩

눈 속에서 애인들이 움트는데요

이행치 못한 하얀 약속의 페이지 같아요

 

모든 언약들을 펼쳐놓고

얘기 좀 해봐요

눈동자에 서로의 모습만

비추어 보며

안아주면 녹아 사라질까

마음에만 머물기로 해요

 

그럼 전설은 처마 밑

거꾸로 커가는 고드름의

그리움만 같아서

언젠가 제 무게로 떨어져

심장을 쑤시고 들어올 거예요

 

그땐 아리고 아파

녹아 없어졌다 말하진

못할 거예요

 

생의 흐린 날에 만나

맑은 날에 사라지는

눈사람 애인

 

 

 

―『시와소금』(2022,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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