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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설득
나영채
고요한 봄의 땅속에서 지금
치열한 설득이 시작되고 있다
지렁이들같이, 양서류같이 꿈틀거리는
근처 냇물 풀리는 소리를 들려주며
목피를 단단히 닫아걸고 웅크리고 있는 씨앗들
지구의 깊은 곳 그 불타는 뜨거운 중심을 향해
잔뿌리로 쬐던 뿌리들을 향해
이제 그 마음을 풀라고
햇볕과 훈훈한 바람으로 설득 중이다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지난겨울은 잊고
23.5도의 기울기만큼의 결심이면
얼었던 땅이 녹는 일이나
무뚝뚝했던 나뭇가지들 끝이
노랗게 움트는 일은 일도 아니라고
물의 목소리 훈훈하게 변했다고 설득 중이다
자연의 설득력은 지극한 진실이며
꽃잎 같은 질감이어서 통하지 않는 일은 없다
이 끝없는 우주도 지구의 기울기를
태양 쪽으로 밀어주고 있으니까
씨앗들은 믿는 것이다
가지런한 밭의 고랑과 하지夏至와 망종亡種같은
그런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그런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상상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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