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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언虛言은 세다
나영채
내일이라는 곳
그곳을 기다려 본다는 것
불콰하게 술 오른 노점 수리공의 허언 같은 것
걱정하지 말라는 그 말을 걱정하다가도
저의 실력을 믿으라는 허언을 내뱉는
내일이라는 낱장
걸핏하면 내일 오라는 말
내일이라는 말엔 적당한 기대가 있듯
내일 이야기하자는 말
그 내일을 믿지 못하면 또 어쩔 텐가
아무리 가기 싫어 버틴다 해도
내일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새순처럼 뾰족하게 돋아나기도 하고
먹빛 구름 뒤에 장대비처럼 오기도 한다
그러나 내일에겐 또 내일이 있어
차일피일 미루어지다 곧 바닥나는 것들이 있을 테지
굴복한 어제를 오늘에 중첩시킨다는 것은
밑천이라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는 힘은 아닐까
그러니 내일은 힘이 세다
연체에 밀린 빚도 오늘의 체불도 내일이면
말끔히 해결된다고 장담하는
내일이라는 허언들
내 아버지가 그랬고 믿었던 빚쟁이가 그랬고
때때로 내가 그러고 있다
내일은 건너뛰고 그다음의 내일로는 갈 수 없지만
그 못 미더운 허언들을 잘 수리하면
내일쯤이야
―시집『그런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것』(상상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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