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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땅
함태숙
저는 지나가는 옵저버이겠으나 이 땅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고 있
습니다
신들이 즐겨 입술을 대는 맹세에 차오르는 두 개의 떨림을 기도하
는 양손을
기도하는 양손을 모으듯이 밑으로 길게 흐르는 원추형 몸을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환영이여 석영처럼 각이 져 반짝이는 지
상의 가장 나쁜 쪽으로 건조한 추상의 고원위로 누추한 오두막과
다정한 찻잔과 그리고
낮은 음역대에서 길들이는 땅 속의 구름
빛마다 닿는 다른 면적에서 각기 다른 맛을 지닌 채로 시 간은 저
마다의 고유함을 익히고 정오의 긴 묵상이 순례의 행렬을 늘이는
공중의 땅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는 지나가는 옵저버
먼 곳의 태양을 등지고 어루만지면 빛과 그림자, 손가락 틈새로 당
신의 빰을 만지던 그 감촉이 다시 당신을 되살리고 잎들을 꽃들을
꿈꾸는 잠의 수면은 크고 붉은 연꽃을 올리고 저는 안심하고 당신
의 가장 나쁜 쪽으로 부는 바람
가장 겸허하고 견고한 음정 하나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에
신들은 숨결을 보태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우주 끝까지 늘이면
수조처럼 출렁이는, 사랑을 응축하면 육체가 되 는 맑고 빛나는
것들을
당신은 가집니다 우리의 다만 할 일은 진리를 다채롭게 하는 일
방랑자여, 당신을 떠나는 일이
당신을 가슴에 들여다 놓은 일이란 것을 알겠습니다
―웹진『시인광장』(2022,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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