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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여름
강재남
좀 더 행복하거나 덜 불행한 삶으로 가요 좋은 여름과 여름이 키
우는 대로 크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요 어정쩡한 날씨는 버려두
고요
비는 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대요 누군가 말한 것 같은
데 생각을 굴려도 굴러가기만 하네요 빗물 고인 자리에 여름이 우
거져요
여름이 슬퍼요
생각을 버리기로 해요
딴청 부리기로 해요
나는 걷고 있어요
발자국 있는 곳마다 대추야자나무를 심어요 대추야자나무 열매
를 거꾸로 키워요 배경으로 걸어두기 좋은 구도로요
여름의 직관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말라가는 여름은 생략하면 그만이고요
스물여섯은 견디기 힘든 숫자였어요
그래서 발자국은 말을 잘 듣질 않았나 봅니다
대추야자나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표정
난해하고 불가해한 얼굴이 대책 없이 흩어져요
여름이 내게 준 건 깊은 잠과 자장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폭우와 빗줄기와 악수하는 사람 빗줄기를 타고 환상동화가 된 스
물여섯의 사람
여름을 거두어요 죽은 여름과 죽어갈 여름, 여름 귀퉁이를 오려
모으는 게 취향이라거나 아니라거나 아무 상관없이요 그냥 다 거
두어가요
―반년간지『상상인』(2021,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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