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너무 많은 여름​ /강재남​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3. 2. 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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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여름

 

​ 강재남​

 

 

좀 더 행복하거나 덜 불행한 삶으로 가요 좋은 여름과 여름이 키

우는 대로 크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요 어정쩡한 날씨는 버려두

고요

 

비는 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대요 누군가 말한 것 같은

데 생각을 굴려도 굴러가기만 하네요 빗물 고인 자리에 여름이 우

거져요

 

여름이 슬퍼요

생각을 버리기로 해요

딴청 부리기로 해요

나는 걷고 있어요

 

발자국 있는 곳마다 대추야자나무를 심어요 대추야자나무 열매

를 거꾸로 키워요 배경으로 걸어두기 좋은 구도로요

 

여름의 직관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말라가는 여름은 생략하면 그만이고요

 

스물여섯은 견디기 힘든 숫자였어요

그래서 발자국은 말을 잘 듣질 않았나 봅니다

대추야자나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표정

난해하고 불가해한 얼굴이 대책 없이 흩어져요​

 

여름이 내게 준 건 깊은 잠과 자장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폭우와 빗줄기와 악수하는 사람 빗줄기를 타고 환상동화가 된 스

물여섯의 사람

 

여름을 거두어요 죽은 여름과 죽어갈 여름, 여름 귀퉁이를 오려

모으는 게 취향이라거나 아니라거나 아무 상관없이요 그냥 다 거

두어가요

 

 

―반년간지『상상인』(2021,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