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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기억
조광자
생의 전부를 가두어온 담장 모퉁이에서 이상(李箱)의 날개를 보았다
이상의, 이상을 향한 접신의 순간에는 아슬한 희열을 동반한 분열 증세가
한나절 지속되었다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날개도 아지랑이처럼 실체가 없다
이번 생에서는 날개를 달아본 적 없었으므로 결코 원적이 될 수 없는 저곳이
생존의 본능만이 바닥을 치는 저곳이
유배당한 지구에서 피를 토하며 멜론을 달라고 부르짖었다는데
죽어가면서야 고향의 향기를 기억해내다니,
밑바닥에서 걸어온 고행의 길이 손바닥 안이라고 뿔을 쫑긋
온몸으로 밀고 가는 저것
―시집『닿을 수 없는 슬픔에게』(문학의전당,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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