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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이삼현
네 식구였던 입이 둘로 줄어들자
먹을 것들이 남아돈다
미처 먹지 못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가래떡을
출출할 때 드시라며 꺼내놓은 아내는
일하는 게 더 편하다고 알바하러 갔다
한파경보가 내린 날
냉동되었던 떡이 먹기 좋게 말랑말랑해졌을 즈음
아파트 세대를 돌며 소독하러 왔다고 벨을 누르느라
손발이 꽁꽁 얼어붙지나 않았는지
얼었다가 녹았다가
사는 일이 꼭 커다란 냉장고에 들락날락거리는 것만 같아
겨울이면 얼었다가 여름이면 녹기를 반복한다
긴장과 해이
딱딱해졌다가 다시 말랑말랑해진다
넷이었던 식구가 둘만 남았어도
밥상을 준비하는 아내 손은 쉬 줄어들 줄 모르고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끓일 때마다
장가가고 없는 2인분까지 넉넉히 준비한다
함께 먹지 못해 남겨진 아쉬움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은 첫째 몫
모레는 둘째 몫을 꺼내 데워 먹으며
식었다가 뜨거워졌다가 소진돼 간다
―『모던포엠』(2023,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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