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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
이삼현
6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2호선에서 환승해 곁에 앉은 나어린 처자가
슬며시 머리를 기대 오네
그만 황송하고 죄송해 어찌할 바를 몰랐네
삼촌뻘 되는 사내 무엇에 끌려 다가오는 것이 황송함이라면
생판 모르는 여자에게 덥석
한쪽을 내주고도 태연한 것은 아내에 대한 죄송함이었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난감해하는데
아랑곳없이 곤한 자세로 단꿈을 꾸네
붉은 머리가 예쁜 오목눈이가 포르르 날아와 앉은
가볍지만 진중한 그 떨림에
가지만 남아 앙상한 겨울나무도 따라 흔들렸을까
아님, 한겨울이라는 걸 잊고 깜박 핀 진달래도
철없이 기대 오는 한 줄기 훈풍에 물든 연분홍일까
지긋이 전해오는 풋것의 온기에
다시 녹지 않을 것 같던 얼음장이 풀리고 있었네
한쪽 어깨부터 맥없이
―『모던포엠』(2023,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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