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새를 가둔 항아리​ /임희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3. 2. 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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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가둔 항아리

임희숙

무서워요 발톱이 걸렸어요

누가 발가락을 물고 놓아주질 않아요

알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죠

깨뜨리겠어요 항아리

작고 겸손한 부리라고 얕본 거죠

침묵하는 부리가 얼마나 험악한지

모가지가 독사를 닮았다는 걸 잊으셨나요

 

백자청화봉황무늬 항아리

나를 가둔 손가락을 분지르고

뱀의 모가지로 칭칭 감아버리려구요

유리질이 녹아내려 날개가 젖네요 까짓

그래도 부수고 말거에요 내동댕이쳐야죠

드디어 나는 떠납니다

안녕

 

이런, 날개가 젖었다는 걸 깜빡했어요

항아리를 깨뜨리라고 파괴해야 한다고

제발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유약에 젖은 발톱이 녹아내리고 있어요

죽어야만 깨지는 알이라면 까짓

그런데

내가 죽으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죠

항아리 밖의 세계는 어디에 있나요

대답해요 당장

―​웹진 『시인광장』(202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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