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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함순례-아버지/강신용-아버지/이재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8. 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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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함순례

 


울 아부지 서른, 울 엄니 스물 셋 꽃아씨, 아부지 투덕한 살집만 믿고 신접살림 차렸다는디, 기둥 세우고, 짚과 흙 찰박찰박 벽 다져, 오로지 두 양반 손을 집칸 올렸다는디, 부쳐먹을 땅뙈기가 없는 기라


내사 남아도는 게 힘이여 붉은 동빛 박지르며 집을 나서면 이윽이윽 해가 지고, 어둠별 묻히고야 삽작을 밀고 들어섰다는디, 한 해 두 해 불어나는 전답, 울 엄니 아부지 얼굴만 봐도 배가 불렀다는디……


늘어나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울 엄니 이태가 멀다 실제 배가 불렀다는디, 갈이질에, 새끼들 가동질에, 하루 해가 지는지 가는지 하 정신 없었다는디, 울 아부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 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


그 징헌 꽃이 셋째 딸년 나였더란다 첫국밥 수저질이 느슨할 밖에……임자 암 걱정 말어 울 아부지 구레나루 쓰윽 훑어다는디, 스무 날을 넘기자 사랑방 올린다고 밤새 불을 써 놓고 퉁탕퉁탕 엄니 잠을 깨웠드란다 모름지기 사내 자슥 셋은 되야 혀 그때 되믄 계집애들이랑 분별하여 방을 줘야 않겄어!


그렇게 맨몸으로 생을 일궜던 울 아부지, 성 안 차는 아들 두 놈 부려놓고 이젠 여기 없네.



-『시와 사람』(2002. 봄)

2010-08-18 / 아침 8시 48분

 

 

아버지/이재무

 

 

어릴 때 아버지가 삽과 괭이로 땅 파거나
낫으로 풀 깎거나 도끼로 장작 패거나
싸구려 담배 물고 먼 산 바라보거나 술에
져서 길바닥에 넘어지거나 저녁 밥상 걷어차거나
할 때에, 식구가 모르는 아버지만의 내밀한
큰 슬픔 있어 그랬으리라 아버지의 큰 뜻
세상에 맞지 않아 그랬으리라 그렇게 바꿔
생각하고는 하였다 그러하지 않고서야
아버지의 무능과 불운 어찌 내 설움으로
연민하고 용서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날의
아버지를 살고 있는 오늘에야 나는 알았다
아버지에게 애초 큰 뜻 없었다는 것을
그저 자연으로 태어나 자연으로 살다갔을
뿐이라는 것을 채마밭에서 풀 뽑고 있는
아버지는 그냥 풀 뽑고 담배 피우는 아버지는
그냥 담배 피우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늦은 밤 멍한 눈길로 티브이 화면이나 쫓는
오늘의 나를 아들은 어떻게 볼까
그도 나를, 나 이상으로 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들아, 자본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란 아버지는
자본 속을 살다 자본에 지쳐 돌아와
멍한 눈길로 그냥 티브이를 보고 있는 거란다
나를 보는 네 눈길이 무섭다
아버지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오늘에까지
연장으로 땅을 파거나 서류를 뒤적이거나
라디오 연속극 듣고 있거나 인터넷하고 있거나
배달되는 신문기사 읽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에게서 아버지 너머를 읽지 말아 다오
아버지는 결코 위대하지 않다
이후로도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다

 

 


-제51회 現代文學賞 수상시집『목화밭지나서 소년은 가고』(현대문학, 2006)
2010-11-06 / 21시 36분

 

 


아버지/강신용

 

 

아버지는 없다
고향 마을에도
타향 거리에도

 

아버지

 

하늘 높이 불러보지만



세월뿐이다

 

 

 

-「나무들은 서서 기도를 한다」문경출판사 2003
-『반경환 명시감상 1』(종려나무, 2008)

2008.10.03/저녁 7시 5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