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받아쓰기 / 임영석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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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임영석

 


내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 해도
그것은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다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백일홍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받아쓴다고
사랑을 모두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받아쓴다는 것은
말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일 뿐,
나는 말의 참뜻을 받아쓰지 못하다
나무며 풀, 꽃들이 받아쓰는 햇빛의 말
각각 다르게 받아써도
저마다 똑같은 말만 받아쓰고 있다
만일, 선생님이 똑같은 말을 불러주고
아이들이 각각 다른 말을 받아쓴다면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햇빛의 참말을 받아쓰는 나무며 풀, 꽃들을 보며
나이 오십에 나도 받아쓰기 공부를 다시 한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말 말고
받침 하나 넣고 빼는 말 말고
모과나무가 받아 쓴 모과 향처럼
살구나무가 받아 쓴 살구 맛처럼
그런 말을 배워서 받아쓰고 싶다

 

 

 

-계간『시에』(2010, 가을호)
2012-10-08 월요일 15시 2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