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새들의 낙원 / 김세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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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낙원


김세형

 

 

뉴칼레도니아 섬은 '카구' 라는 새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큰 은총을 내려주시어 그 섬엔
온갖 나무열매들과 벌레들 등, 일용할 양식이 늘 지천으로 널려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시각각 목숨을 노리는 포식자도 없다
그러니 카구에겐 정말 그 섬이 지상낙원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날개달린 새라지만 이쯤 되면 카구에게
하늘이 뭔 필요가 있으며 날개가 뭔 필요가 있으랴?
때문에 카구는 이젠 날개가 있어도 날지 않는다
아니,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한다
카구의 축 늘어진 기인 날개는 이미 만찬 파티용 드레스가 된 지 오래다
좀처럼 빨지 않아 좀 더럽긴 하지만 자신이 마치
십칠 팔세기 영국 귀족사회 사교클럽을 드나드는 공작부인이라도 된 듯,
그 꾀죄죄한 긴 드레스를 땅에 질질 끌리도록 몸에 축 걸쳐 입고
늘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에덴동산 만찬파티에 참석하러
온종일 섬 이곳저곳을 뒤뚱, 뒤뚱, 분주히 나돌아다닌다
그것이 카구가 에덴동산에서 하는 일과 전부이다
인간의 잃어버린 에덴동산도 아마 그곳일 것이다
원래 새였던 인간도 그 낙원에서 살다 결국 날개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새들의 낙원인 그 섬 밖으로 쫓겨났을까?
아니, 달아났을까
그리고 왜 인간은 그 새들의 낙원으로 돌아가 살지 않고
낙원 밖에서 잃어버린 날개를 그리워하며 늘 눈물지으며 살고 있는가?
그 까닭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아마 잘 모르실 것이다
그러나 다시 날개를 달고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르길 날마다 학수고대 꿈꾸는 난,
그 까닭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카구는 날개 없이 살아가는 그곳이 낙원이지만,
인간은 날개 없이 살아가는 그곳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월간『우리詩』(2011, 3월호)
2012-10-09  화요일 2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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