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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 / 황은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2. 10.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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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


황은주

 


아삭, 창문을 여는 한 그루 사과나무 기척
사방四方이 없어 부푸는 둥근 것들은 동쪽부터 빨갛게 물들어간다
과수원 중천으로 핑그르르
누군가 전구를 돌려 끄고 있다
당분간은 철조망의 계절


어두워진 빨강, 눈 밖에 난 검은 여름이
여름 내내 흔들리다 간 곳에
흔들린 맛들이 떨어져 있다
집 한 채를 허무는 공사가 한창이고
유독 허공의 맛을 즐기는 것들의 입맛에는 어지러운 인 이 박혀 있다


죽은 옹이는 사과의 말을 듣는 귀
지난가을 찢어진 가지가 있고 그건 방향의 편애
북향에도 쓸모없는 편애가 한창이다


비스듬한 접목의 자리
망종 무렵이 기울어져 있어 씨 뿌리는 철
서로 모르는 계절이 어슬렁거리는 과수원
바람을 가득 가두어놓고 있는 철조망
사과는 지금 황경 75도
윗목이 따뜻해졌는지 기울어진 사과나무들
이 밤, 철모르는 그믐달은
풋사과처럼 삼만 광년을 달리지도 모른다

 

 


(2012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2012-10-10  수요일 18시 0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