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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 평상
손순미
길은 저 혼자 우체국으로 들어가 버렸고, 바람은 측백나무 겨드
랑이를 부채질하다 기절해 버렸다 우체국 앞에는 한 토막의 평상이
놓여 있고 직원들은 편지를 쓰지 않는 인류의 앞날을 걱정하며 평
상 위에 놓인 더위를 구경한다
한 남자가 평상을 향해 걸어온다 남자의 바지를 그대로 갈아입은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 남자가 측백나무 쪽으로 평상을 옮기자 그림
자는 황급히 배웅을 마치고 돌아간다 못난 남자에게서 태어난 불행
한 껍데기는 가라! 노숙에 지친 남자가 겨우 헛소리를 삼키며 평상
위에 눕는다 약지가 없는 남자의 손이 나뭇잎처럼 흔들린다 여름이
이렇게 춥다니!
십자가를 짊어지듯 남자는 평상을 짊어지고 예수처럼 누워있다
영원히 오지 않을 부활을 꿈꾸지 않으며. 각도를 조금만 비틀면 폭
염에 순교한 자로 기록될 광경이다
남자를 태운 평상은, 생각하면 눈물이 핑∼도는 모양이다
-월간『현대시학』(2011, 1월호)
-웹진 시인광장 선정『2011 올해의 좋은 시 100선』(아인북스, 2011)
2012-10-11 목요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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