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은유
차주일
장미꽃 한 송이 냄새 맡는다.
십 리 쯤 도망가다 잡힌 꽃사슴의 숨소리가 들려오고
목덜미에 박힌 흑요석의 돌팔매가 보인다.
인류보다 네 배쯤 두꺼운 손톱을 지닌 수컷 짐승이
구애를 위해 바칠 먹잇감을 사냥하던 날이었을 거야.
태아가 제 영혼을 어미 몸 밖으로 차낼 때
수컷은 향기의 발원을 목격했지.
식어가는 핏물이 엉키는 꽃사슴의 눈동자를.
수컷이 동족들 눈을 피해
맨손으로 땅을 파헤쳐 꽃사슴을 묻을 때
육식성이었던 제 눈빛을 같이 묻어주었지.
동족 사냥까지 했던 송곳니를 어금니처럼 갈며
살코기 색깔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수컷은
짧아진 손톱으로 들장미 한 가지를 분질렀던 거야.
목동맥을 자르듯.
피비린내 대신 향기를 수혈한 장미꽃을 받아 안은 암컷은
타제석기처럼 뾰족한 가시에 묻은 핏자국을 보면서
어미 잃은 새끼 사슴의 울음소리를 들었지.
그 순간 암컷의 눈에 인류 최초의 은유가 머물렀어.
암컷은 수컷을 바라보기만 했지.
침묵은 언어가 필요 없는 완전한 대화여서
처음으로 꽃을 주고받은 짐승은 첫 인류가 되었지.
암컷이 수컷의 눈을 응시할 때
수컷은 사람의 박동을 시작했어.
그 장면을 숨어 지켜보던 동족들의 맥박까지도
사람의 심장에서 뛰기 시작했지.
손의 접촉이 없었음에도 눈에서 눈으로 건너오는
이 최초의 감정을 숭상한 그들은
차마 잠들지 못했던 거야.
갈등은 몸속에서 자라나는 털이야…….
혼잣말 되뇌던 수컷이 깜박 잠들었다가 화들짝 깨났던 거야.
그리곤 마음에 두고 있던 암컷을 황급히 찾아냈지.
수컷의 눈 속에 이미 들어와 있던 피사체는
황급함의 은유를 알아차리고 첫 미소를 지어주었지.
암컷은 제 피사체를 향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제 피사체가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수컷의 눈앞까지.
그들은 서로에게 제 목덜미를 내어줬고
송곳니를 덮어 감춘 입술로 두 번의 키스를 해주었지.
제 눈빛으로 달궈진 체온을 입술로 확인하며.
그 때 생식 목적이 아닌 유희를 위한 첫 성교가 태어났어.
그것은 조물주가 모를 첫 번째 현상이었지.
-계간『시와 표현』(2011, 창간호)
2012-10-10 수요일 1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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