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 이창기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35)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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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이창기 (1959∼ )

 

 

한 사나흘 깊은 몸살을 앓다
며칠 참았던 담배를 사러
뒷마당에 쓰러져 있던 자전거를
겨우 일으켜 세운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데
웬 여인이 불쑥 나타나
양조간장 한 병을 사오란다
깻잎장아찌를 담가야 한다고


잘 있거라
처녀애들 젖가슴처럼
탱탱한 바퀴에 가뿐한 몸을 싣고
나는 재빠르게 모퉁이를 돌아선다


근데
이미 오래전에 한 사내를 소화시킨 듯한
저 여인은 누구인가
저 여인이 기억하는,
혹은 잊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35』(동아일보. 2012년 12월 03일)
 기사입력 2012-12-03 03:00  기사수정 2012-12-03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