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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김혜순
달려도 달려도 검은 안대 속이다
검은 브래지어 속 젖꼭지다
칠년만에 눈뜬 매미인데
하필이면 군수님 경찰관님 기관장님 앞에서
시 낭독해야 한다
이제 막 눈떴는데 숯불에 달군 석쇠무늬가
허벅지에 새겨지는 송아지처럼
나는 지금 당신 앞에서 검게 탄 줄무늬를 등에 지고
창살을 물어뜯는 표범처럼 으르렁거린다
(당신이 내 두 눈을 가린 손을 뗐는데
하필 당신 늑골 조롱 속입니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눈빛을 바라봅니다
끔찍한 기다림과 안달 난 눈빛
빨간 웅덩이 속에서 하얀 새는 같은 말 하염없이 지껄이고
이 밤 다 지나가도록 음반은 튀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노래가
그 반복을 견디고 또 견디면서 으르렁거립니다)
라고 편지를 쓴다
하필이면 빗금 아래 가려진 글자들이다
바람 불어 숨 못 쉬는 풍뎅이다
검은 그림자 흰 그림자 번갈아 찾아오는
동네에 창궐하는 큰 슬픔이
가련하고 작은 슬픔들을 달래주는
달려도 달려도 검은 안대 속이다
-계간『시와세계』(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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