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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에 관한 풍문 / 이건청 - 고래의 꿈 / 송찬호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5. 2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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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에 관한 풍문


이건청

 

 

사람들은 누구나 한 마리씩 고래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넘어져 무르팍이 깨지고 깨진

자리가 피에 젖기 시작하면서, 일어서고 일어서면서

들판을 바라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밭을 보게

되면서, 풀밭에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를 보게

되면서, 사람 속에서 크고 있는 진짜 고래를

보게 된다고 하는데, 수평선을 툭, 툭 끊으

면서 달려가고 싶어하는 녀석을 보게 된다고

하는데, 노을녘이면 흉터로나 남은 무인도

몇개를 끌고 밀면서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

기진한 채 잠에 빠져버리고 싶어하는 늙은

고래를 보게 된다고 하는데 ...... .

 

 

-월간『현대문학』(2010년 7월호)

 

 

고래에 관한 풍문

 

이건청

 

 

사람들이 고래를 묻었다고 한다. 흙을 파고 고래를 묻었다고 한다.

통째로 묻었다고 한다. 이 도시 어딘가에 고래를 묻었다고 한다.

몸통에 따개비가 붙은 채 묻었다고 한다. 이따금, 분기를 뿜어 올

리면서 고래가 뭍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바다를 버리고, 그래야 한

다는 듯이 사람 세상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수평선도 버리고 해

뜨는 바다도, 해 지는 바다도 그냥 두고 왔다고 한다. 도시 한

복판, 국회의사당 앞마당이나 광화문 네거리, 시청 앞 광장까지

와서 사람들이 파놓은 어둡고 음습한 흙을 찾아 누웠다고 한다.

소신공양하듯, 누웠다고 한다. 이 도시 어딘가에 촉루가 되어가

는 고래가 있다고 한다. 몇 알갱이 사리가 되어가고 있는 고래

가 있다고 한다.

 

 

 

<서정시학>(2012. 봄호) 이건청 집중조명/ 시 5편/ 이건청-맹문재 대담
<가져온 곳 : 맹문재 다음 홈페이지>
http://cafe445.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EeEN&fldid=4K4I&datanum=35&search=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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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꿈


송찬호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듣는다

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

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

봐, 화분에서 분수가 벌써 이만큼 자랐는걸……
 

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

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겠다

저 아래 물밑을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쏜살같이 해협을 달려봐야겠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꿈이 하나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시집「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