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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열쇠들 / 문창갑 - 열쇠 꾸러미 / 이창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1. 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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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열쇠들

  

문창갑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짝 안 맞는 열쇠와 자물쇠들 수두룩하다
감출 것도, 지킬 것도 없으면서
이 많은 열쇠와 자물쇠들
언제 이렇게 긁어모았는지

 

아, 이 열쇠들
아. 이 자물쇠들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내 앞에 오래 서성이던 그 사람
이유 없이 등돌린 건
굳게 문 걸어 잠그고 있던 내 몸의
이 자물쇠들 때문이었다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
열려있던 그 집
그냥 들어가도 되는 그 집
발만 동동 구르다 영영 들어가지 못한 건
비틀며, 꽂아보며
열린 문 의심하던 내 마음의
이 열쇠들 때문이었다

  

 

 

―시집『코뿔소』(문학의전당,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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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꾸러미

 

이창수

 

 

서랍을 정리하다가 버려둔 열쇠 꾸러미를 보았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하나둘 모아둔 것들이

한 꾸러미나 되었다

녹이 슨 열쇠를 만지작거리다보니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빈방들이 생각났다

하지만 옛 시절이 그리운 것도 아니어서

열쇠 꾸러미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철렁!

열쇠들이 소리를 질렀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열쇠들이

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순한 짐승들이

나를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것만 같았다

 
철렁!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저려왔다

 

 

 

―시집 『귓속에서 운다』(실천문학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