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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 산수유 ―알 1 / 거처 몸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3. 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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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유
   ―알 1

 

   정진규

 

 

   수유리라고는 하지만 도봉산 바로 咫尺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인데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매우 정확하다 훌륭하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벌 떼들, 꿀벌 떼들, 우리 집 뜨락에 어제오늘 가득하다 잔치 잔치 벌였다 한 그루 활짝 핀, 그래 滿開의 산수유, 노오란 꽃숭어리들에 꽃숭어리마다에 노오랗게 취해! 진종일 환하다 나도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두근거렸다 잉잉거렸다 이건 노동이랄 수만은 없다 꽃이다! 열려 있는 것을 마다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럴 까닭이 있겠는가 사전을 뒤적거려 보니 꿀벌들은 꿀을 찾아 11킬로미터 이상 往復한다고 했다 그래, 왕복이다 나의 사랑도 일찍이 그렇게 길 없는 길을 찾아 왕복했던가 너를 드나들었던가 그래, 무엇이든 왕복일 수 있어야지 사랑을 하면 그런 특수 통신망을 갖게 되지 光케이블을 갖게 되지 그건 아직도 유효해! 한 가닥 염장 미역으로 새카맣게 웅크려 있던 내 사랑아, 다시 노오랗게 사랑을 採蜜하고 싶은 사람아, 이건 아직도 유효해!


 

 
―시집『알詩』(세계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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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처 몸살


   정진규

 

 

   나는 두 그루의 산수유와 동거(同居)하고 있다 한 그루는 수유리에서 30년 동거했으며, 한 그루는 이곳 보체리에서 6년째 동거하고 있다 새 산수유가 아니라 이곳 보체리로 내가 거처를 옮기면서 모시고 온 수유리 30 산수유, 그게 보체리 산수유다 3년 동안 호되게 몸살을 앓고 보체리 산수유로 이제 겨우 자리 잡았다 나도 함께 몸살을 호되게 앓아 주었다 「거처몸살」이라 이름 지었다 수유리와 보체리가 이제 겨우 한몸이 되었다 고백하거니와 내게는 10년도 더 된 거처몸살이 또 하나 있다 한 사람으로부터 떠나야 했던 내 거처몸살, 산수유만큼 사람 몸살은, 사랑 몸살은 자리걷이가 쉽지 않다 그늘 무덤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산수유 한 그루 내 몸살을 눈물겹게 쓸어주고 있다 고맙다 다닥다닥 노랗게 조춘(肇春)으로 터져서!
 
 

 

―월간『유심』(2014, 3월-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