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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유적 - 김경성 / 이은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4. 9. 24.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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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유적
 

김경성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 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 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 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된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

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ㅡ시집『와온』(문학의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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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유적

 

이은재

 

 
남산동 허름한 식당 구석진 자리

통나무의자 하나 앉아 있다

나이테로 걸어온 백년

나무 유적을 만난다

 
나무의 생은 둥글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꿈길 있어

나무는 쉼 없이 걸었으리라


꽃 피는 오솔길

천둥 치는 들판

술 취한 모롱이 돌아

언 강에 발목 빠뜨렸으리라


갈수록 좁아지고 어둑해지는 골짜기

길을 잃기도 했으리라

 
푸른 날들이,

제 몸에 새겨 넣은 파문이

하얗게 마르고 있다

 
나는 동그랗게 앉았다

 

 

 

ㅡ시집 『나무의 유적』(그루,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