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박목월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 지훈(芝薰)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시집『청록집』(을유문화사, 1946;『박목월 시전집』.민음사. 200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목월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시는 시를 쪼매 읽어본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박두진 시인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우는 조지훈 시인이 박목월 시인에게 완화삼(玩花衫)이라는 시를 보내고 이에 화답한 시가 ’나그네’ 이다. 사람 개개인 취향과 기호에 따라 저처럼 완화삼 시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나그네 시가 일반인들에게 회자되면서 훨씬 더 유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박목월 하면 나그네가 떠오른다. 즉 나그네라는 단어는 박목월 시인이 것이 돼버린 것이다. 나그네라는 일반명사를 마치 고유명사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이 시의 힘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렇게 일반명사를 고유명사인 것처럼 만들어버린 시도 많다. ‘진달래꽃’ 하면 김소월 시인의 것, ‘국화‘ 하면 서정주 시인의 것, ‘승무’ 하면 조지훈 시인의 것, ‘낙화’ 하면 이형기 시인의 것이 돼버린 것이다. 개중에는 미학적으로 사유적으로 잘 쓰여진 시가 있고 세대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행복‘ 은 유치환 시인의 것이고 많은 자화상과 서시 의 시가 있지만 ’서시‘와 자화상은 윤동주 시인의 것인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많은 시를 계속해서 생산을 해내고 있지만 한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에 나온 시들보다 더 뛰어난 시를 써야 한다. 한 편의 시를 숙성하고 곰삭히고 절차탁마하여 일반명사를 고유명사처럼 한번 만들어볼 일이다.
'시를♠읽고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아들 최 감독/최형태 (0) | 2015.06.12 |
---|---|
소주병/공광규 (0) | 2015.06.09 |
씬냉이꽃 / 김달진 (0) | 2015.06.06 |
손님/이성부 (0) | 2015.05.29 |
와불臥佛 / 신현정 (0) | 2015.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