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최 감독
―최형태(1952∼ )
전공인 영화를 접은 둘째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바리스타에 입문하였다
졸업 작품으로 단편영화를 찍고
개막작으로 뽑히고 하길래
영화감독 아들 하나 두나 보다 했는데
영화판에는 나서볼 엄두도 못 내고
여기저기 이력서 내고 면접도 보러 다니고 하더니
끝내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날 손에 들고 들어오던
권정생 선생 책이라니……
아비 닮아 저런 책이나 좋아한다
이 험난한 청년 수난 시대에 어찌 먹고살려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식구들은 그를
감독이라 부른다 최 감독
안 되면 자신의 삶이라도 연출할 테니까
알고 보면 누구나 감독이다
―시집『어느 무명 파두 가수의 노래』(책만드는집, 2015)
지금은 그래도 많이 희석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치는 클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많지 않고 높은 곳만 쳐다볼 때의 이야기다. 수평이 아닌 수직을 향해 인생바라기를 할 때 모두들 자신의 꿈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고생해서 죽자사자 뒷바라지 한만큼 당당히 요구를 하고 강요를 하기도 했었다. 자신의 인생의 보상적 차원에서 아마 지금도 가부장적 권위를 이어가는 가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의 화자는 시대의 흐름을 일찌감치 파악을 하고 살아온 경험으로 세상이 물질 아닌 수직적인 삶보다 수평의 삶에 그 무엇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세상이 알아주는 영화를 전공하며 기대치를 모으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바리스타라는 엉뚱한 것을 한다고 할 때도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그의 인생에 끼어들어 무엇을 하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권정생 선생 책을 손에 들고 나타나니까 아들의 장래가 걱정이 되면서도 서생의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이 은근히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이 시의 하이라이트, 피날레는 바로 마지막 두 줄이다. 인생은 모노드라마이다. 자기의 것이고 자신이 주연이며 조연이고 더 나아가 연출가인 것이다. 수평은 안전하고 수직은 위태롭다는 가치관을 가진다. 선입관을 버리고 수직을 택하든 수평의 길을 가든 그것은 오로지 아들 자신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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