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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나무에 이력서를 내다
최정란
잎 지으랴 꽃 빚으랴 바쁜 나무
봄이 주문한 꽃들의 견적서를 쓰고
잎들의 월간 생산 계획을 짠다
가장 알맞은 순서도에 따라
발주 받은 꽃들을 완성한다
납기에 늦지 않게 꽃들을 싣고
좁은 가지 끝까지 빠짐없이 배달하려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안으로 굳은 옹이를 쓰다듬는 나무
연말 결산은 붉은 낙엽으로 다 턴다
대차대조표에 빈 가지만 남아도
봄이면 다시 꼼꼼하게 부름켜를 조인다
제 몸의 스위치를 올려
가지와 뿌리를 닦고 기름친다
나도 나무공장에 출근하고 싶다
숙련공 아니어서 정식으로 채용이 안 된다면
꽃 지고 난 뒷설거지라도
나무를 거들고 싶다
첫 월급봉투처럼 두근거리며
봄인 나무와 딱 한 번, 접 붙고 싶다
―시집『여우장갑』(문학의전당,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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