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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 김선우 -나는 여기 피어 있고/이순현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5. 2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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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 김선우

 


몸져누운 어머니의 예순여섯 생신날
고향에 가 소변을 받아드리다 보았네
한때 무성한 숲이었을 음부
더운 이슬 고인 밤 풀 여치들의
사랑이 농익어 달 부풀던 그곳에
황토먼지 날리는 된비알이 있었네
비탈진 밭에서 젊음을 혹사시킨
산간 마을 여인의 성기는 비탈을 닮아 간다는,
세간 속설이 내 마음에 천둥 소낙비 뿌려
어머니 몸을 닦아드리다 온통 내가 젖는데
건성드뭇한 산비알
열매가 꽃으로 씨앗으로 흙으로
되돌아가는 소슬한 평화를 보았네
부끄러워 무릎을 끙, 세우는
어머니의 비알밭은 어린 여자아이의
밋밋하고 앳된 잠지를 닮아 있었네
돌아갈 채비를 끝내고 있었네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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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피어 있고

이순현


몸 안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짚어보는 어디든
지느러미의 퍼덕거림이 만져진다 물고기는 꽃을 통해
다른 세게로 이동해간다 인간의 꽃은 구순과 음순에서
피어난다 말과 몸은 한배를 타고난 형제다



가랑이 사이에 기저귀를 대고
수년째 누워 있는 어머니,
음부는 움푹 패여 컴컴하다
푹 패인 그 주변에는
허옇게 센 음모가
드문드문 지키고 있다

한 필생의 바닥에는
태반이 떨어져 나간 분화구들이
무수하게 패여 있을 거야

손길이 다 닿지 않는 잔등처럼
다 닿을 수 없었을 기슭,

아직 피지 않은 꽃들 있을까
산벚꽃 몽우리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있을까

이년아 밥 안 주냐!

엄마 빨리 와봐
할머니 또 똥 쌌어

아줌마는 어디서 왔어요?

꿈지럭꿈지럭 이불을 끌어당기는
손아귀의 힘줄 끄트머리마다
손톱들이 숟가락처럼 앙칼지게 박혀 있다



ㅡ시집 『내 몸이 유적이다』 (문학동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