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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독수리/신현락-히말라야의 독수리/최동호-히말라야 독수리/박무웅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8. 7. 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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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독수리

 
  신현락

 
  

  내내 탐닉하였던 깊은 우물 바닥이 여기입니다 마른 우물의 바람이
여러 생의 지층을 밀어 올려 하늘과 가까운 산정을 이루었는지 모르겠
습니다 시간의 끝을 이루고 있는 형상이 산정이란 생각만으로도 내 겨
드랑이에는 푸른 날개가 출렁입니다
 

  계곡에서 날아오는 한 무리의 독수리를 보며 나는 누구의 몸을 얻어
어느 정신으로 죽을 것인지 생각합니다 죽음이란 가장 가벼운 숨결 하
나 날개 위에 올려놓는 일이란 걸 어릴 적 빠졌던 우물물을 다 마시고
서도 어렴풋한 기억인데요
  

  지금 바람의 결을 타고 사뿐히 내려앉는 커다란 날개를 보고 서 있자
니 끝내 무너지지 않던 손바닥만한 천장이 광활한 우주였음을 알겠습니
다 그대가 가진 하늘의 몸을 빌면 또 깊은 우물이 열리는 것은 직립의
존재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운명임을 받아들입니다
 

  아지랑이 같은 고요*의 깊이를 견디면서 다시 내려 가야하는 하늘우
물의 바닥으로 바람은 여러 생을 지나고 있습니다만 혹시라도 구름의
부음은 흘리지 마세요 독수리 밥으로 던져지는 주검일지라도 가장 높
이 나는 새의 가장 푸른 심장이 되는 것입니다

 

 

* 송재학의 시 「황무지란 바람을 숨긴 이름이기도 하다」

 



계간『시와 문화』(201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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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독수리


최동호
 

 

히말라야 설산에 사는 전설의 독수리들은


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지면


설산의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언어가


펜 끝에 머물러, 눈 감고 있을 때


설산에 머리를 부닺쳐 피에 물든 독수리의 두개골이 떠오른다

 

 

 

―월간『유심』(2013년 7월호)
(제11회 유심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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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독수리


박무웅


히말라야는 땅 보다

하늘이 더 척박하다

시시로 몰아치는 기류氣流는 또 얼마나

난폭한 맹금류들인가

설산을 돌아

몰아쳐오는 상승기류와

눈에 날아와 박히는 날카로운

눈보라의 발톱과 부리

 

히말라야 독수리는

바람의 一家

혹독한 바람의 훈육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강하는 것들의 명단에

그 이름을 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독수리는 하강과 상승의

그 광대무변廣大無邊

배워야 한다

 

쓸모를 다한 발톱과 부리를

제 스스로 뽑고

새로이 고쳐 백년을 살듯

어쩌다 만나는 온순한 날씨도

제 발톱과 부리를 갈고 있는 중이다

 

, 히말라야 독수리의 눈에

복사꽃 한 송이 핀다

  

 

계간『문학 · 선』(2018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