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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미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누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50]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5』(국립공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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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눈사람
박홍점
신발을 바꿔 신고 오느라 늦었다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오느라
어머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느라
즐겨듣던 음악 같은 손들에게 악수만도 해가 짧아
마당가에 열린 눈물을 닦느라 늦었다
웃으세요, 웃으세요 일제히 사진을 찍느라 늦었다
목이 긴 젊은 아내가 울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 눈물로 빚은 몽돌들 지고 오느라 늦었다
태풍을 예고하는 놀란 쥐떼들 달래느라
스무 살 아기에게 불린 젖을 먹이느라 늦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이 눈치 저 눈치 제 몸이 먼저 무거워서 늦었다
노를 저어 줄 사공이 탈이 나서
겨울 지나고도 유난히 그늘이 짙었다
헐레벌떡 봄꽃 준비하는 나무들 눈을 흘겼다
―시집『피스타치오의 표정』(천년의시작,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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