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조은길
벚나무 검은 껍질을 뚫고
갓 태어난 젖빛 꽃망울들 따뜻하다
나는 문득 대중 목욕탕이 그리워진다
뽀오얀 수증기 속에
스스럼없이 발가벗은 여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서로서로 등도 밀어주고 요구르트도 나누어 마시며
볼록하거나 이미 홀쭉해진 젖거슴이거나
엉덩이거나 검은 음모에 덮여 있는
그 위대한 생산의 집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시장 구석자리에서 날마다 생선을 파는
생선 비린내보다
니코틴 내가 더 지독한 늙은 여자의
물간 생선을 떨이해 주고 싶다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툭툭 좌판을 털면 울컥
일어나는 젖비린내 아…
어머니
어두운 마루에 허겁지겁 행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퉁퉁 불어 푸릇푸릇 핏줄이 불거진
젖을 물리시던 어머니
3월 구석구석마다 젖내가 …어머니
그립다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작. 1998)
-시집『노을이 흐르는 강』(서정시학.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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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임영조
밖에는 지금
누가 오고 있느냐
흙먼지 자욱한 꽃샘바람
먼 산이 꿈틀거린다
나른한 햇볕 아래
선잠 깬 나무들이 기지개켜듯
하늘을 힘껏 밀어올리자
조르르 구르는 푸른 물소리
문득 귀가 맑게 트인다
누가 또 내 말 하는지
떠도는 소문처럼 바람이 불고
턱없이 가슴 뛰는 기대로
입술이 트듯 꽃망울이 부푼다
오늘은 무슨 기별 없을까
온종일 궁금한 3월
그 미완의 화폭 위에
그리운 이름들을 써놓고
찬연한 부활을 기다려본다.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3시집 갈대는 배후가 없다)』(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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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오세영
흐르는 계곡 물에
귀기울이면
3월은
겨울 옷을 빨래하는 여인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는 것 같다.
만발한 진달래 꽃술에
귀기울이면
3월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오는 것 같다.
새순을 움틔우는 대지에
귀기울이면
3월은
아가의 젖 빠는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아아, 눈부신 태양을 향해
연녹색 잎들이 손짓하는 달, 3월은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외치던
만세 소리로 오는 것 같다.
―시집『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시와시학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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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박서영
꽃잎들은 긴 바닥과 찰나의 허공이라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아서는지. 무덤 속에서 튀어 올라오는 사랑과 입맞춤 한다. 나는 북쪽에 산다. 피부는 들판의 풀들처럼 자라면서 늙어가고, 가끔은 잠적한다. 그리곤 튀어 오른다. 무덤 위에 피는 꽃처럼 잠시 아름다워진다. 생일(生日)과 기일(忌日)이여, 점점 더 멀어져라. 나의 울음과 너의 울음이 다르다. 저녁과 아침 사이 밤이여, 점점 더 캄캄해져라. 나는 남쪽에 살고 북쪽에 산다. 바람이 분다. 꽃 피고 진다. 밤하늘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바다에 흐르는 은하수. 바닥의 애벌레 좌. 얼룩진 한쪽 벽 구석의 거미 좌. 이젠 천천히 기어 너에게 간다. 길의 점막에 달라붙은 꽃잎들. 바닥을 물고 빠는 저 불쌍한 입술들. 벚꽃나무가 핀 너의 가슴은 백야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계간『작가와 사회』(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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