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페광廢鑛
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리개차가 감석을 날라 붓던 버럭더미 위에
민들레가 피어도 그냥 춥던 사월
지까다비를 신은 삼촌의 친구들은
우리 집 봉당에 모여 소주를 켰다.
나는 그들이 주먹을 떠는 까닭을 몰랐다.
밤이면 숱한 빈 움막에서 도깨비가 나온대서
칸델라 불이 흐린 뒷방에 박혀
늙은 덕대가 접어준 딱지를 세었다.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
빈 금구덩이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
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
08.12.31/저녁 6시 26분
*복대기 - 광석을 빻아 금을 거의 잡고 난 뒤 방아확 밑바닥에 처진 돌가루나 확에서 물과 함께 흘러나오는 광석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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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경칩驚蟄
흙 묻은 속옷바람으로 누워
아내는 몸을 떨며 기침을 했다.
온종일 방고래가 들먹이고
메주 뜨는 냄새가 역한 정미소 뒷방.
십촉 전등 아래 광산 젊은 패들은
밤 이슥토록 철 늦은 섯다판을 벌여
아내 대신 묵을 치고 술을 나르고
풀무를 돌려 방에 군불을 때고.
볏섬을 싣고 온 마차꾼까지 끼여
판이 어우러지면 어느새 닭이 울어
버럭을 지러 나갈 아내를 위해 나는
개평을 뜯어 해장국을 심키러 갔다.
경칩이 와도 그냥 추운 촌 장터.
전쟁통에 맞아죽은 육발이의 처는
우거지가 많이 든 해장국을 말고.
07.12.31/저녁 6시 10분
방고래 - 방의 구들장 밑에 있는, 불김과 연기가 나가는 길/
방아확 -방앗공이가 떨어진 자리에 묻어 그 속에 넣고 찧거나 빻거나 하는 돌절구 모양
의 우묵한 돌./확
방앗공이 -방아확 속에 든 물건을 내리찧는데 쓰는 나무나 쇠나 돌 따위의 길쭉한 물건.
(방앗공이는 제 산 밑에서 팔아 먹으랬다) 그 본 바닥에서 팔아야 실수가 없지, 이익을 더
남기려고 멀리 가지고 가거나 하면 도리어 손해를 보게 된다는 말./마방
버력* - 광석이나 석탄을 캘 때 나오는, 광물 성분이 섞이지 않은 잡돌./감돌/마목
감돌 - 유용한 광물을 일정한 정도 이상으로 지닌 광물.
마복 - 광석에 섞이어 있는 버력 부분.
27
장마 뒤
그해 여름에 우리는 삼거리 금방앗간
그 앞집으로 이사를 했다. 거기다가
물감과 간수를 파는 가게를 냈다.
삼촌이 객지에서 온 광부들과 얼려
매일장취로 술만 퍼먹고 다니던
그 지겹던 가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가게에 박혀 소주만 찾았지만
내게는 밤이 오는 것만은 즐거웠다.
길 건너 도장갈보네 집에서는
밤이 돼야만 노랫가락 소리가 들리고
나이 어린 갈보는 술꾼에게 졸리다가
우리 집으로 쫓겨와 숨어서 떨었다.
그해의 그 뜨겁던 열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세거리 개울가에 모여 수군대던
농군들은. 소나기가 오던 날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도장갈보네 집 마당은 피로 얼룩졌다
마침내 장마가 져도 나이 어린 갈보는
좀체 신명이 나지 않는 걸까
어느날 돌연히 읍내로 떠나버려
집 나간 삼촌까지도 영 돌아오지 않았다.
개울물이 불어 우리는 뒷산으로
피난을 가야했고 장마가 들면
우리는 그 피비린내를 잊지 못한 채
다시 장터로 이사를 한다는 소문이었다.
07.12.31/저녁 6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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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탄광촌이 한창 흥행하던 시절에 내 고향
탄광촌에도 갈보라는 술집 작부들이
많이 있었지요.
사람 네다섯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술집이라도
작부들 둘, 셋씩 있었는데
저도 술집 아가씨 한 두명이 생각이 납니다.
무슨 썸씽이 있어서가 아니고
나이 18, 19홉 스물도 안된 앳된 아가씨들이 술집에서
몸을 파는 것도 안 됐었는데
그렇게 있다가 빚을 더 지게 되어
창녀촌으로 들어가게 된 것을 보면은 더욱 마음이
안 좋았지요.
여기 시에 나오는 갈보라는 말이 그래서 더 유난히
크게 귀에 울리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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