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필사 시

고정희 시집...여섯째거리--대동마다/1.2.3.4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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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거리--대동마당

집치레 번듯하니 민주집이 분명하다


1. 말로 주면 섬으로 받는 사람의 화복대길

아하 사람아
앞앞이 소중한 목숨둥우리 있어
문밖 나가 있는 동안 시시로 궁금하고
들어와 있는 동안 미더운 사람아
보듬아보고 안아보고 치뜰어도*
새록새록 그리운 건 사람뿐이라
많아도 넘치는 법이 없고
모자라도 허전하지 않는 것은 사람뿐이라
서로 눈알 부라려도 칼로 물 베기요
서로 등 돌려도 마음 맞물려 지새는 자웅이라
싸웠다가 돌아서서 웃음으로 악수하고
흩어졌다 달려와서 한뜻으로 맞들고
애 녹였다 불현듯 기쁨으로 넘침이라

아하 사람아
앞앞이 길이 있되
수천리 사무쳐 부르는 길이요
앞앞이 뜻이 있되
억조창생 우뚝우뚝 만나는 뜻이요
앞앞이 본이 있되
어머니 태아 주신 사랑의 본이요
앞앞이 정이 있되
천 가람 만 가람에 달 뜨는 정이라
말로 주면 섬으로 받는 사람의 화복대길
어찌 아니 깨우치며
어찌 아니 믿을손가
남의 눈에 눈물 빼면
이녁 눈에 피눈물내는
사람의 인과응보
어찌 아니 오묘하며
어찌 아니 갚을손가
영묘하다 사람아
대견하다 사람아
다섯 자 일곱 치 키 될까말까
한 평도 안되는 조브장한 가슴 속
무에 그리 큰 벌판이 있어
일년 사시장철 부는 바람 거센 바람 드센 바람
회오리바람 돌개바람
폭풍 태풍 삭풍 북풍한설에도 끄떡없고
일년 열두달 종종걸음치는 세월
매화 이화 홍도화 해당화 피고 지거니
낙화유수에도 끄떡없고
일년 삼백육십오일 천지간 절기 따라
산천초목 낙락장송 우거지고 춤추고 화답하고
단풍들고 백설이 분분해도 끄떡없고
한평생 머리맡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사지가 지끈지끈 오장이 후끈후끈
복통 치통 두통 애통 간통에도 끄떡없고
하루가 멀다하고 저승사자 이승사자 강남사자
삼사자가 들며 나며 이별이야 하직이야
자출환생에도 끄떡없구나

08.01.02/ 낮 1시 40분

2. 사람의 집이 있어 사람과 함께 사니

무엇을 가졌는가
무엇을 알았는가
아하 사람아
사람의 집이 있어 사람과 함께 사니
사람 있는 세상 사람이 주인이라
천지는 언제 생겼으며 일월은 언제 생겼던고
천지개벽직후 건곤만연한 연후에
자방 하나 생겨 있고
지벽어축하야 축방땅이 생겨 있고
인방은 사람이 나고
백팔 천지신명 마음속에 들어앉아
일월선신 어머니 화복길흉을 마련헐 제
천지개벽 해방 후에 자유세상 생겨나고
개과천선 사월혁명 후에 민주세상 생겨나고
역사종말 오일륙 후에 정의시민 생겨나고
광주민중항쟁 후에 해방세상 길을 트고
유월시민투쟁 후에 통일세상 길을 트고
개헌성취하야 직선제 선거 후에
밝은 세상 길을 트고
오공비리 청문회 개회 후에 사람세상 길을 트니
눈 있는 사람들아 눈으로 봐라
귀 있는 사람들아 귀로 들어라
입 있는 사람들아 말로 해라
만민이 증인이요 만민이 주인이라

사십여년 만고 끝에 되찾은 사람세상
우걸이 조주하야 옥야천리 너른 들에
유유한 저 백호는 건풍파에 깃을 치누나
고른 땅에 씨 뿌리어 비지땀 쏟아붓느니 곡식이로다
탈곡기 들여놓고 찧거나 까불거니*
사뤄내니* 쌀이로다
정치인이 지은 부정 기업인이 지은 부정 군인지 지은 부정
설설이 일궈내니 밥이로다
조상들이 구운 그릇 가득 담뿍 밥을 담아
억조창생 인간만민 먹고 사니 누구 아니 상덕인가

08.01.02/낮 2시 25분
까부르다 - 곡식 같은 것을 키에 담아 키 끝을 위아래로 부채질하듯이 부치어 잡물을 날리 어 내다.
사뤄내다 - 사르다 - 키 따위로 곡식을 까부른 뒤에 못 쓸 것을 따로 털어 버리다/사래질
사래질 - 키 따위에 곡식 같은 것을 담고 사르는 일


3. 이 집이 뉘집이며 본이 어디메뇨

이 집이 뉘집이며 본이 어디메뇨
삼천리 남녘땅 민주에 본을 두고
무등봉 솔씨 받아 묘향산에 던졌더니
그 솔씨 싹이 나고 뿌리가 내렸구나
밤이면 이슬 맞아 낮이면 태양 쐬어
청장목에 황장목에 도리기둥 되었을 제
아랫동네 박첨지 윗동네 김언년
나무 올려 가자스라 스롱스롱 톱질하니
밑둥은 잘라내어 상기둥 마련허구
가운데둥 잘라내어 도리기둥 마련허구
상가지 잘라내어 서까래 마련허구
동네방네 가내 대소 한뜻으로 맞들어
지신밟고 주춧돌 세워 상량을 올렸구나

대팻밥에 불이 나고 다림줄에 대천지 염원 실리는디,
동녘기둥 첫째칸은 남녀평등 들어앉고
남녘기둥 둘째칸은 임금평등 들어앉고
서녘기둥 셋째칸은 기회평등 들어앉고
북녘기둥 넷째칸은 만님평등 들어앉고
용마루 마룻대에 세계평화 들어앉으니
어구여라 지경이야
통일조국 집이로다
어구여라 지경이야
민족자주 집이로다

도리기둥에 연목 걸어 기와 얹으니
민주집이 분명하다
사랑으로 담을 치고 믿음으로 문들 닫아
전후 화경 너른 들에
모란 작약 영산 홍도 들쭉 측백 전나무 심어
난초 지초 좋은 나무 화분에 옮겨놓고
녹음방초 상화초는 아침 이슬 머금은 듯
연방주 연잎은 사람 보고 반기는 듯
후원의 약밭 같아
인삼 가삼 풍삼 불로초 불사초 좌우로 심었으니
자유민주 집치레가 어찌 일 좋을손가

08.01.02/낮 3시 4분

4. 에헤야 집이로다 살림의 집이로다

에레야 집이로다 사람의 집이로다
앞태를 보아도 사람의 집이요
뒤태를 보아도 사람의 집이로다
들창문 열어라 사람의 집이요
밑창문 열어라 사람의 집이로다
죽임의 집이 아닌 살림의 집이요
노예의 집이 아닌 자유의 집이요
인형의 집이 아닌 주인의 집이요
복종의 집이 아닌 대화의 집이요
희생의 집이 아닌 나눔의 집이요
소외의 집이 아닌 만남의 집이요
우열이 따로 없는 평등의 집이요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여편은 여편대로
누구나 일할 권리 있는 집이요
누구나 쉴 자유 있는 집이요
누구나 맡은 임무 있는 집이요
누가나 타고난 천성대로 받들 책임 있는 집이라
집안살림 나라살림 출입문 따로 없고
가사일 바깥일 따로 없는 집이라
차별이 없는 중에 자기 길 각자 있고
귀천이 없는 중에 각자 직분 있는 집이라
조화 있고 화목 있고 위로 있는 집이라

에헤야 집이로다
사람의 집이로다
고대하고 기다리고 정성 다한 이 집에
입춘을 맡아보니 그냥 대길 탄탄대로
마흔아홉 상기둥 한복판에
"자유로운 너와 나 함께 사는 집"이라
뚜렷이 붙어 있고
쉰아홉 중기둥 한복판에
"한사랑 세계사랑" 뚜렷이 붙어 있고
일혼아홉 도리기둥 한복판에
"여자평화" 인류평화" 뚜렷이 붙어 있고
앞문 뒷문 여닫이에 소문만복래라
부모님은 천년수요 민주자녀 만성이라
집치레 이리 되니 해방터가 분명하다
춘하추동 사계왕은 철철이 나고 들면
맨드라마 봉선화 화초 피어 넘나들 적
춘풍이 건들하면 천리향 진동하야
달빛이 오르면 언덕배기 만장하야
자금 춘색이요 강구연월이라
이와같은 좋은 터에
해방노적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