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필사 시

고정희 유고시집...10.11.12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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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밥과 자본주의
행방불명 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

무릇 너희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거듭나리라, 수수께끼를 주신 하느님, 우리
가 영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미사일 핵
무기고에서 나오는 살인능력 보유자와 우리들 밥줄을
틀어진 자를 구세주로 받드는 오늘날 이 세상 절반의
살겁과 기아선상의 대하여 어떤 비상정책을 수립하고
계신지요
한나절을 일한 자나 하루 종일 일한 자나 똑같이 초
대 생계비를 지불함이 하늘나라 은총이다 선포하셨건
만, 반평생을 뼈빠지게 일한 자나 일년으르 혼빠지게 일
한 자나 똑같이 임금을 채불당한 채 밀린 품삯 받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다국적기업 뒤꽁무니 쫓아간 우리
딸들이 임금 대신 똥물을 뒤집어쓰고 울부짖을 때 당
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온갖 제국주의 음모와 죽음의 쓰레기들이 자유와 정
의와 평화라는 식품 상표를 달고, 당신의 이름으로,
배고픈 나라의 백성을 향하여 무한대로 수출되고 있는
작금에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아 살인병기를 자처하는 다국적군이 실로 처참하
고 참혹하게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땅을 피바다로 싹쓸
이할 때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
까 “미국은 새로운 전쟁시대의 첫 승리자이다”부시가
오만불손하게 음성을 높일 때,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스무 번씩 기립박수를 칠 때도 당신은
온전히 침묵했습니다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님,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신지
요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 쟈니 윤의 쇼 프로그램에서
미국식 웃는 법을 익히고 계십니까, 아니면 힘이 무지
무지 센 나라의 현대판 노예 수출선에 팔려가고 계십
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용용 죽겠지 꼭꼭 숨어라 목하
종말론이 생산중인 페르시아 만이나 바빌론의 무기창
고에서 재고를 헤아리는 무기 상인들을 격려하고 계십
니까? 아니아니 당신의 이름을 교수형에 처한 공산대
륙이나 모스끄바 뻬레스뜨로이까 전철 속에 앉아 이단
의 풍물을 감상하고 계십니까? 대답해 주시지요 하느
님, 당신을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교
회의 창고부터 열어야 합니다

이 곤궁한 시대에
교회는 실로 너무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교회는 너무 많은 재물을 가졌고 너무 많은 거짓을 가졌고
너무 많은 보태기 십자가를 가졌고
너무 많은 권위와 너무 많은 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파당과 너무 많은 미움과
너무 많은 철조망과 벽을 가졌습니다
빼앗긴 백성들이 갖지 못한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잘못된 권력이 가진 것을 교회는 다 가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벙어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장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귀머거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침묵으로 번창합니다
의인의 변절을 탓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옳은 자들이 당신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않는 시대가 오기 전에
하느님, 가버나움을 후려치듯 후려지듯
교회를 옮음의 땅으로 되돌려
참회의 강물이 온갖 살겁의 무기들을 휩쓸어가게 하소서
새로운 참소리 태어나게 하소서
거기에 창세기의 빛이 있사옵니다 아멘......


08.01.07/ 밤 10시 58분

11
밥과 자본주의
가진자의 일곱 가지 복

그때에 예수께서 자본시장을 들러보시고
부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자본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부자들의 저승에 있게 될 것이다

땅을 독점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땅 없는 하늘나라에 들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독차지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권력 없는 극락에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배불리 먹고 마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고픈 식탁에서 멀리 있을 것이다

철없이 웃고 즐기고 떠드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저 세상에서 받을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아첨꾼 때문에 명예를 얻고 칭찬받은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들의 선조들도 매국노를 그렇게 대하였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는 행복하다
너 - 희 - 는 불 - 행 - 하 - 다

08.010.9 / 저녁 6시 3분

12
밥과 자본주의
구정동아 구정동아

예수께서 재림한 날이 다소 가까워지자 구정동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고 그에 앞서 사람을 보내셨다 그들은 먼길을 떠나 구정동에 당도하자 예수가 머물 거처를 수소문하였으나 구정동 주민들은 그런 수상한 자를 차고에서라도 재울 수 없다며 집안에 맞아들이기를 단연 거절하였다 또 이 지역을 순회하던 방범대원은 주민등록마저 없는 자가 어찌 언감생심 구정동 금파트에서 이슬 가릴 생각을 하느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를 본 제자 김교신과 함석헌이 주님, 씨알 없는 땅에서 미련을 거둘까요, 하고 물었으니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짓고 나서 구정동 사랑가를 부르시며 목놓아 우셨다

08.01.10/ 새벽 12시 50분

아직도 내가 너를 짝사랑하는구나

구정동아, 구정동아,
아직도 내가 너를 짝사랑하는구나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땅에 내 백성이 거하지 않는구나
암탉이 병아를 품어안 듯
내 너를 안으려 얼마나 애썼더냐
네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말할 날을 간절히 기다렸으나
그 때마저 너는 거절하였다
이제 나는 너를 어쩌란 말이냐
이 땅에서 가장 고독한 백성아
오늘 너와 내가 이별이란 말이냐?
몸 푸는 여자처럼 내 아픔이 크구나
내가 너를 다시 찾는 날은 없으리라
너와 나 사이에 이별이 있다면
네 땅에서 내가 내쫓기는 이별이요
내 나라에서 네가 버림받는 이별이다
일찍이 두로와 시돈이 너와 같지 않았더냐
구정동아, 구정동아, 구정동아
시대의 재난이 강물처럼 흐르는 시대에
너는 망령보다고약스런 거드름을 피우며
가난한 백성과는 상종조차 멀리하고
축재를 뽐내는 특권층이 되려느냐?
탐욕의 피라미드에 금테를 덧입히고
피묻은 바벨탑에 장식을 매달면서
교만의 기운이 문전마다 꽉 찼구나
네 몸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밤마다 내 침상을 둘러싸는구나
향유를 말로 부어도 소용없다
내 미련이 이리 큰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너를 태어나게 하지 말 것을
너희에게 내린 물질의 기적을
판자촌과 동두천에 내렸더라면
네 타락이 그리 깊지 않았을 것을
그 날에 포주와 살인범이
너보다 다행스럽다 말하게 되었구나
강남아, 가파르나움아
가혹하고 고통스런 환란의 시대에
내 백성의 피땀으로 호화스럼을 누린 자는 다
무서운 폐허에 떨어질 것이다!
정녕 나는 너를 어쩌란 말이냐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땅에 내 백성이 거하지 않는구나

08.0109/아침 9시 57분분

어느 가난한 여자의 변론을 들으심

제자들이 부자 동네에서 묻은 신발의 먼지마저 다 털고 난 후 예수의 발길을 재촉할 쩨 돌연 행색이 초라하고 두 눈에서 광채가 나는 한 여자가 다가와 예수의 발길을 가로 막았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영광을 받으실이여,
이 땅에서 등돌림을 조금만 늦추소서
이 땅에서 연민을 거두지 마소서
땅에 목숨 부지하는 백성에게는
공평한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이 그 하나요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그 둘이며
하늘 땅 중간에서 생성하는 공기가 그 셋입니다
햇살과 물과 공기 중 그 어느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살아남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이 공평한 것 세 가지가 있는 땅 어디서나
하느님 나라의 씨알인 죄없고
순결한 어린 영혼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이옵니다
무릇 먹이를 앞에 놓고 단식할 소가 어디 있으며
스스로 어향을 떠날 물고기가 어디 있으리까
우리에겐 이제 완전한 의인 열 사람도
영원히 멸망의 흑암에 떨어질 악인도 없는 듯싶사옵니다
당신의 못된 교회더러 그 명단을 제출해보라 하소서
그 판단을 따르시겠습니까
지사라 칭송받는 이들에게 그 척도를 제시해보라 하소서
그 잣대를 믿으시겠습니까
당신은 타락을 징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에
그 오심 속에 이미 척도가 있습니다
애초부터 불안전한 인간에게 완전을 요구하지 마시고
완전해지려는 마음을 받으소서
그리하여 선과 악의 사선을 넘고 있는 우리 모두
공평한 구원의 햇살을 받게 되기까지
이것이 재림의 완성이옵니다


마음을 돌리신 예수

땅바닥에 지팡이로 묵묵히 금을 긋고 계시던 예수께서 여자를 향하여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자매여, 네 사랑이 믿음을 구했다
그대 속에 인류의 어머니가 있노라
세상은 여자도 구원받는다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가자, 그대 처마 밑에서 하룻밤을 묵으리라
그대 거처를 근심하지 말라
나는 대접받으로 온 것이 아니라
내 백성의 고난을 싸매러 왔다
그대 고통이 서려 있는 처마 밑이면 족하다

그리고 앞장 서 일행과 함께 산동네 비탈길을 향하셨다 찬란한 햇빛이 그 뒤를 따랐다

08.01.10/아침 10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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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시인은 세상에 대해 할말이 무척
많았나봅니다.
시 형식을 빌려서 쓰기는 하였지만
소설을 썼으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전지전능하시 하느님.
자기가 최고로 알던 종교에서 오는 실망이 시를 쓰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