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베틀노래
간밤에 내 사내 맨발로 재를 넘더니
강 건너 묵은 밭에 눈바람이 치려나
가는 무명 한자락 뭉턱 잘라서
솜버선 만들어 언 발 감아주려네
돌 가시어 찢긴 발가락 감아주려네
갈가마귀떼 달빛 줄기 타고 올라가
하늘과 땅 달과 별을 새까맣게 죽이더니
두억시니* 몰려들어 방물배를 엎으려나
갈대 우거진 길에 벙거지만 들나고
내 사내 더듬는 길목 나무 꺽이는 소리뿐
속이지 마오 속이지 마오 날더러
월궁의 못난 선녀라 속이지 마오
부티 허리에 풀고 복이라도 손에 잡고
사내 따라갈 나를 칠성판에 누워라도 갈 나를
간밤에 활고자 온 마을에 드리더니
내 사내 밟는 돌에 검은 피 엉기더니
*두억시니 - 사나운 귀신. 야차
08.01.21/ 오후 5시 26분
104
길 1
황아장수* 황아짐 따라
장길 골목길 기웃대다
얻었구나 잡동사니
온 주머니 가득 얻었구나.
피리소리 꽹과리소리
초라니 따라 떠돌다가
잃었구나 잃었구나
털털 빈손 남았구나
풀밭에 무릎 꿇으면
보이느니 핏빛 노을.
돌밭에 턱 괴면
들리느니 설운 울음.
빗소리 바람소리에 몰려
밤길 진흙길 허둥대다
찾았구나 잃은 세월
그 잃었던 모든 것들.
08.01.22/아침 102분 눈이 내리는 아침에
*황아 - 끈목, 땀배쌈지, 바늘, 실 그밖의 온갖 잡살뱅이의 것.
잡살뱅이 - 여러 가지가 뒤섞인 중요하지 않는 물건.
105
길 2
가는구나 모두들 가는구나
구럭 질끈 어깨에 짊어메고
언청이 헌데 난 놈 애꾸눈이
모두들 제멋대로 한데 얼려
*논다니질하고 싸움질하고
찧고 까불고 별 방정 다 떨면서
가는구나 모두들 가는구나
밝음도 어둠도 잃은
이승에서 저승 넘어가는 길목
검은 강 검은 숲
외진 길을 가는구나
흥도 안 나는데 어깨춤을 추면서
잦으모리 휘모리에 이여아
조라치 걸음 치면서
외팔이 절뚝발이에 곰배팔이
그 속에 나도 끼여
가는구나 모두들 가는구나
병신육갑춤을 추면서
아는 이들 어딘가에 숨어 서서
애타게 내 이를 불러쌓는
그 소리 눈물겹게 들으면서
이승에서 저승 넘어가는 길목
꿈속에서처럼 내가 가는구나
08.01.22/ 눈 내리는 아침 10시 7분
*논다니 - 갈보
106
네 무슨 변강쇠라
짐승의 노래
네 무슨 병강쇠라
내 머리 뎅겅 잘라
네 무슨 힘에 넘쳐
내 몸퉁 뚝 분질러
통로구 열두 화덕
참나무불에 집어넣고
더운 구들 비단 방석
뭇 계집 치마에 싸여
겨울이라 긴긴밤에
날 밝는 줄 모르는가
갈 곳이 없어
내 머물 데도 없어
중천에 놓이 올라
삼백년으르 헤매다가
높은 산 깊은 강에
또 삼백년 떠돌다가
어찌하랴 내 돌아와
*먹감나무에 앉았구나
부엉이에 혼을 씌워
한밤에 섧게 우는구나
내 섰던 마을 어귀
뭇 계집이 모였구나
밀따리방아 밟던 발에
양귀신이 붙었구나
황천길 칠흑강이
눈앞에 흐르는데
네 무슨 변강쇠라
도끼로 내 몸 찍어
허구헌 겨울밤을
중천에 떠 울게 하는가
08.01.22/아침 10시 19분
*먹감나무 - 여러해 묵은 감나무의 속재목
107
가객
내 앵금 영 넘어가는 산새소리
내 젓대 가시나무 사이 바람소리
내 피리 밤 새워 우는 산골 물소리
무서리 깔린 과일전
가마니 속 철늦은 침시
푸른 달빛에 뒤척이던 풋장꾼도
이른 새벽 눈 비비고 나앉아
골목 끝의 한뎃가마에
시래깃국은 끓고
무서리 마르기 전 봇짐 챙겨
돌아가리라 새파란 하늘
잔풀 깔린 성벽을 타고
여기 한 개 그림자만 남겼네
내 앵금 이승 떠나는 울음소리
내 젓대 동무해가는 가는 벌레소리
내 피리 나를 보내는 노랫소리
08.01.22/ 아침 10시 22분
108
물명주 열두 필
동해바다 여왕님
딸 길러 세상 구경하라고
물명주 열두 필 풀어
물 갈라 길 열어 내보내고
내 아버지
돈 벌라 차 태워 날 보내며
가겟방 쪽마루에 앉아
소주잔 콧물만 훌쩍였네
바람은 왜 이리 차누
물명주 열두 필
꽃버선으로 밟고
날보고 환하게 웃으라는데
쪽문에 머리를 박고
연탄 위에 손을 얹으면
세상은 온통 바람투성이
물명주 열두 필 돌아갈 길도 걷히고
08.01.22/ 밤 11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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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의 단어들은 봐도 봐도 왜 이렇게 잊어버리는지.
신경림의 시에서
두렵다 무섭다는 말이 많이 나오지만
황아장수, 두억시니, 논다니 같은 옛날 말도 많이 나옵니다.
단어의 뜻을 모르고 그냥 봐도 되지만
뜻을 알고 보면은 더 좋기에 찾아본 단어를 찾아보고 또 찾아보고 합니다.
이제는 외웠네요.
두억시니와 황아, 논다니.
*두억시니 - 사나운 귀신. 야차
*황아 - 끈목, 땀배쌈지, 바늘, 실 그밖의 온갖 잡살뱅이의 것.
잡살뱅이 - 여러 가지가 뒤섞인 중요하지 않는 물건.
*논다니 - 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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