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조>아버지의 노래/최형만(2020 제8회 등대문학상 시부문 최우수작 당선작)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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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아버니의 노래

 

최형만

 

 

뭍아래 물기를 여닫던 밤

통통배는 물때만 되면 바다로 나갔다

바짓단까지 양말목을 올린 아버지는

기척도 없이 문턱을 넘으셨다

어린 나는 꿈결 같다 말했고

아버진 만선滿船이 부른 꿈이라 말했다

텅 빈 물간에 낯빛이 붉어지는 동안

목숨의 중심까지 맨몸으로 지났다

밍크고래의 주검이 하얗게 밀려든 날

비취색 물빛만 그물코에 꿰다가

공선空船으로 돌아오신 아버지

손등을 쓸어간 해풍에 바닷새도 떠나고

실금 간 어창은 실잠에 들었다

빈 몸으로 흔들릴 때마다

자줏빛 쓴물을 가슴에 들이는 아버지

은빛 물살을 물고 온 날치 떼도 없다

그믐처럼 흰 너울에 속내를 게워내고서야

통째로 몸을 여는 바다

해국의 꽃그늘이 엎드릴 때면

몇 개의 계절이 수평선을 넘어갔을까

파랑 친 바람이 환하게 길을 내자

물꽃을 쥔 아버지가 물을 타고 오신다

뭍으로 온 햇귀에 잠을 깨면

천 길 바깥에서도 풍어가가 들리는 것이다

 

 

<2020 8회 등대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20211211345/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