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시>탑 /이해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1. 15:06
728x90

 

이해리

 

 

이끼도 끼고 군데군데 금 갔다

꼭대기 층 한 귀퉁이는 떨어져 나갔다

떨어져 나간 곳을 푸른 하늘이 채우고 있다

도굴과 훼손과 유기의 질곡을

온몸으로 받들고도 꼿꼿이 서 있는 것은

견디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견딤으로 공을 들인 몸은 좀

깨지기도 해야 아름다웠다

고난의 상흔도 보여야 미더웠다

언제부턴가 온전한 것이 외려

미완이란 생각이 든다

깨진 곳을 문질러 가슴에 갖다 대면

온몸에서 수군거리는 상처들

이루어지는 것 드물어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가슴 층층에 쌓여

바람 부는 폐사지에 낡아가고 있다면

당신도 나도 다 탑이다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202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