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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산사
―부석사에서
최기향
포슬포슬 가루눈이 어루듯이 내린다
부처님도 큰스님도 출타중인 무량수전
돌이 된 선묘낭자의 결계結界만이 환하다
소리를 등에 지고 잠이 든 법고 곁에
안양루 늙은 목어 눈 뜨고도 꿈을 꾸나
하얗게 뼈를 드러낸 고요만이 자욱하다
시간의 우듬지에 숨어 우는 천년 바람
나 하나 다 비우고 너를 다시 채울 때
온 세상 돌아와 앉은 텅 빈 고요, 만난다
저무는 강가에서
최기향
내 안에 자맥질하는 물오리 첨벙첨벙
마을을 휘감으며 흐르는 강물을 보면
한순간 내 몸도 녹아 노을빛 물이 된다
모래톱에 터를 잡은 버드나무, 줄이 곱다
귀소를 서두르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비워져 부신 하늘로 포물선을 긋는다
무거워진 서녘 멀리 달이 내려 꽃이 피면
어둠에 조아리는 물소리 풀벌레소리
바람도 닻을 내리고 수면 위에 눕는다
<제11회 시조21 신인문학상>
2021년 3월 15일 19시 37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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