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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1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푸른 옹기
안이숲
옆구리 모두 유통기한 하나씩 흉터처럼 찍혀 있는데 나는 나의 유통기한을 기억해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몇 대째 이어 내려오는 내 몸속의 물들이 씨간장이라고 명명해 주신 적도 있지만
씨가 무엇인지도 모를 어린 나이부터 서리를 맞는 일을 배웠다
가끔 내 몸을 씻겨 주기도 하는 소나기를 피부에 새겨 넣기도 하고
바람이 전해주는 먼 곳의 이야기를 쟁여 두어 차곡차곡 담아 시의 근원을 만든다
씨란 할머니의 그 웃대 할머니의 고함 소리, 어찌나 그 목청소리가 크신지 뒷집 개가 놀라 도망가면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한번씩 뚜껑을 열 때마다 간장 속은 세상 모두를 달이고도 남을 만큼 찰지가 짰다
꽃잎 하나 떨어지지 않는 날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일도 허기가 져서 무두질해 부드러워진 옹기 한 벌 걸쳐 입고 먼 섬으로 떠나고 싶기도 하고
커다란 옹기를 반으로 뚝딱 잘라 양산을 만들어 쓰고 도시로 쇼핑을 나서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마트에서 파는 나의 짝퉁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으로 들은 이후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짱짱한 나의 둘레, 진짜는 진짜답게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법
나는 나의 방식을 온몸으로 쟁여둔다
또다시 봄이 되어 훌쩍 성숙한 내 속 씨간장 한 그릇을, 봄이 퍼내 갈 때를 기다려 나는 나를 완성한다
ㅡ『제11회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1)
2021년 4월 29일 18시 21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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