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오늘의 레퀴엠 ​/우남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3. 1. 11. 19:24
728x90

오늘의 레퀴엠 

우남정 

 

 

붉은 뿌리를 잘라내고

소금물에 데친 주검을 먹는다

등뼈에 칼집을 넣어 발라 회친 주검을 먹는다

가마솥에 고아 낸 흐물거리는 주검을 먹는다

주검은 뜨겁고 달콤하고 비릿하다

 

꽃무늬 접시에 주검을 올린다

주검에 고명을 올린다

마트에서 순교한 죽음들을 세일하고 있다

신선한 주검을 고른다

누군가의 주검을 먹고 누군가의 죽음이 자라난다

 

무덤에 돋아나는 오랑캐꽃

사랑한 것들의 주검에 꽃이 핀다

죽음의 젖을 물고

푸른 상수리 나뭇잎에서 눈물이 반짝 빛난다

 

나는 배가 고프다

네 영혼의 마지막까지 갉아먹고 떠나려, 작정한 듯

 

 

 

―시집『뱀파이어의 봄』(천년의시작, 2022)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서정 /이종곤  (1) 2023.01.13
물소리 /유계자  (0) 2023.01.11
오래된 끝에서​ /우남정  (0) 2023.01.11
독거 /김선태  (0) 2023.01.11
능소화 /이동화  (0) 2023.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