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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유계자
철퍽철퍽
한나절 수차를 밟는 염부의 걸음이 방금 걷어 올린 미역처럼 후줄근하다
소금창고 가는 길, 짊어진 소금가마가 기우뚱
바닷물 저장고에 떨어져 버렸다
염천에 점심이나 먹고 건져야겠다며
담배 한 대 피우고 소금을 찾으러 갔더니
빈 가마만 동동
바닷물이 낳은 소금
서둘러 왔던 곳으로 돌아가 버리고
선술집에서 만난 소금꽃 같던 여자
날 못 믿느냐며
가을 함초 같이 붉은 입술로 평생 수차의 지팡이가 되어주겠다던 그 여자
소금처럼 짜디짠 눈물까지 저당 잡히고는 걸음을 지워버렸다
수차를 굴리다가
수차례 사금파리 같은 이름 다 잊었노라
염판에 엎드려 저녁노을에게 큰소리치다가
철벅철벅
세상은 잘도 돌아가는데
온종일 돌아도 염천은 염전
맨발의 염부는 딱 한 번 염천을 벗어나 바다로 돌아가고
세상에서 건진 것은 어느새 세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폐염閉鹽을 지날 때마다 철퍽철퍽 쏟아지던 물소리를 받아내곤 한다
―시집『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지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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