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미루나무 길은 안녕할까 /김선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3. 1. 2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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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길은 안녕할까

 

김선희

 

 

오랜 가뭄으로 대청호에 물이 줄어 

가장자리에 나이테처럼 결이 생겼다

 

저쯤이면 우리 집인 것 같아

그 언저리까지 돌팔매를 던져본다

풍덩 소리를 내며

깊고 나직한 한숨이 강바닥에 드러눕는다

 

칠 남매가 살을 부비며 곰실곰실 살아가던 곳

속을 보이면 금방이라도 걸어갈 듯 가까운데

빗장을 잠근 듯 고요하다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엔

동네 길바닥과 항아리들도 올라왔다던 곳

새말 할머니 댁 가는 미루나무 길가에 피어나던

붉은 참나리 꽃은 물속에서 계절을 잊은 걸까

 

오랜 가뭄에도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 미루나무 길

 

구불구불 할머니를 닮은 그 길을 마음으로 걸어가며

강둑으로 넘어오는 물안개를 따라가 본다

 

 

 

―시집『감등을 켜다』(천년의시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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