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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길은 안녕할까
김선희
오랜 가뭄으로 대청호에 물이 줄어
가장자리에 나이테처럼 결이 생겼다
저쯤이면 우리 집인 것 같아
그 언저리까지 돌팔매를 던져본다
풍덩 소리를 내며
깊고 나직한 한숨이 강바닥에 드러눕는다
칠 남매가 살을 부비며 곰실곰실 살아가던 곳
속을 보이면 금방이라도 걸어갈 듯 가까운데
빗장을 잠근 듯 고요하다
가뭄이 심했던 어느 해엔
동네 길바닥과 항아리들도 올라왔다던 곳
새말 할머니 댁 가는 미루나무 길가에 피어나던
붉은 참나리 꽃은 물속에서 계절을 잊은 걸까
오랜 가뭄에도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는 미루나무 길
구불구불 할머니를 닮은 그 길을 마음으로 걸어가며
강둑으로 넘어오는 물안개를 따라가 본다
―시집『감등을 켜다』(천년의시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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