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김영랑
「오 ― 매 단풍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 ― 매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 ― 매 단풍들것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전집』. 문학세계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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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시집』.시문학사. 1935 :『김영랑 전집』.문학세계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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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른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프시 짓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전집』. 문학세계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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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아실 이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잣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냐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잣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잣마음은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영랑 전집』. 문학세계사.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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