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다시 필사 시

눈사람 만들기 /조영란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8. 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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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만들기

 

조영란

 

 

얼마나 마음을 단단히 뭉쳤는가가 이 작업의 묘미입니다.

 

움켜쥘 수 없는 손은 생략해도 무방합니다

발이 없어도 어디든 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좀 더 풍성한 은유가 따라올 것입니다

 

모자를 머리 위에 올려놓아 보세요

햇볕의 사적인 감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코는 적당히 비뚫어지는 게 좋습니다

앞뒤 없이 한없이 둥글기만 한 것들에게 모서리가 생길 것입니다

 

맨땅을 뒹굴게 하고 싶겠지만 참아야만 합니다

흰 옷에 얼룩을 묻히는 것은 불안을 사랑하는 일

점점 얼어붙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니까요

 

웃을지 울지는 알아서 결정하세요

어차피 보여줄 것은 텅 빈 미래인 걸요

 

우리는 사라질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완성을 소망하며 쓸데없이 한 시절을 바칩니다

 

보이나요?

 

미치도록 뜨거운 심장 때문에 전 생애가 무너져내리는 한 사람

 

당신의 솜씨입니다

 

 

 

―​시집당신을 필사해도 되겠습니까(시인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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