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툭, 떨어졌다
나정숙
장례식장 앞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여기저기에 담배꽁초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가 다니던 레미콘 회사가 위치한 작은 도시,
뱅글거리는 삶을 매달고 달리는 차량들을
애써 외면했다
장례식장 금속문 손잡이는 왜 이리 차가운지
말쑥한 양복 차림을 한 그가
경쾌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는다
각자 슬픔의 무게만큼 부의금 봉투를 채웠다
그를 닮은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되어 금방이라도 녹아 흘러버릴 듯한
여자의 팔에 매달린 채
향로 안에 재가 툭, 떨어졌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려오는 발가락은 아픈 줄을 몰랐다
슬픔이란 언제나 발끝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보다
여전히 환하게 웃는 그가
우리의 안부를 묻는다
마음이 먼저 바닥에 떨어진다
— 『열린시학』(2022, 가을호)
'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길에서 /김학명 (0) | 2022.11.23 |
---|---|
두물머리 연꽃 /김학명 (0) | 2022.11.23 |
처음인 양 / 심언주 (0) | 2022.11.22 |
스리슬쩍, 사과 /김찬옥 (0) | 2022.11.21 |
우크라이나 /박민서 (0) | 2022.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