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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임보

나의 투쟁 임보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고 나와 싸웠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패배를 모른다 나는 돈이 아닌 말을 얻기 위해 싸웠다 그래서 나는 몇 권의 시집을 얻었다 나는 명예가 아닌 명분을 위해 싸웠다 그래서 나에겐 아직 큰 적이 없다 80을 넘어선 이젠 싸울 상대가 없다 모두가 다 내 상전임을 비로소 알았다 ㅡ 『POSITION』(2022, 가을호)

오프런 /김영철

오픈런 김영철 주머니에 손을 넣은 기다림은 하나도 없다 포켓몬 빵을 그리는 뱀보다 훨씬 긴 시간 책이나 팔짱을 낄 때 '뮤'가 오지 않을까 꿈마저 곤히 잠든 기억 저편 창고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스스 눈 뜬 아이 선명한 에움길 따라 먼지를 내며 온다 아이는 어른이 되고 청춘은 백발 되어 마냥 좋은 눈빛으로 깡충깡충 뜀을 뛰는 똑 닮은 토끼를 위한 초록 마당을 펼친다 ㅡ 『시와소금』(2022, 가을호)

구피*의 하루 /장영춘

구피*의 하루 장영춘 온종일 어항 속 태평양을 건너듯 출구 없는 레일 위를 돌리고 돌려도 또다시 제자리걸음 그물 속에 갇힌 오늘 한때는 네 어머니도 종종걸음치셨지 한여름 용천수에 발 한번 담글 새 없이 어머니 움푹 팬 발자국 이끼처럼 떠 있는 저들도 속수무책,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저출산 막대그래프 눈금을 채워가듯 한 달이 멀다 하고는 쏟아내는 새끼들 *구피 : 열대어 ―『시와소금』 (2022,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