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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堂神을 찾던 당신 –해안동, 동당 /장영춘

당신堂神을 찾던 당신 –해안동, 동당 장영춘 누구의 손길이었나 근원을 찾던 발길 미끄덩 넘어지며 무심의 단죄를 받듯 풀더미 허리 헤치며 길 없는 길을 간다 아침 이슬 밟으며 당신堂神을 찾던 당신 지성으로 빌었던 간절함도 녹이 슬어 다 식은 제단 둘레에 표지석 하나 없는 당신堂神은 거기 있는데 당신은 거기 없고 덩그러니 하늘 향해 손 내밀던 팽나무 아래 해안동 하르방당에 상사화꽃 피었다 ―『시와소금』 (2022, 겨울호)

간절기​ /채종국

간절기 ​ 채종국 ​​ ​ 헨델의 아리아를 듣는 아침 ​ 봄눈처럼 어색한 말을 하는 아침 ​ 마스크를 벗고 가지에 싹 튼 권태를 읽는다 ​ 권태라는 것은 봄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텍스트 ​ 나른한 온기에 꼬리를 감춘 고양이처럼 ​ 담장 너머 숨어버린 검은 모습의 겨울 애상을 찾는다 ​ 네모 난 새의 울음 눈 속에 갇히고 허공에 걸려있는 부음 같은 햇살 몇 줄 ​ 저를 구원하라며 봄을 기다리는 가녀린 나무의 간절한 손처럼 봄은 곧 부르짖는 자의 응답이라 하지만 ​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아침 시퍼런 하늘은 그러한 간절도 모르는 채 나무의 마른 기도를 태우는 중이다 ​ ​ ​​ ―웹진『시인광장』(2023, 2월호)

오렌지에게​ /최문자​​​​

오렌지에게 ​ 최문자​ ​​ ​ 사랑할 때는 서로 오렌지이고 싶지 먼 곳에서 익고 있는 어금니가 새파란 ​ 이미 사랑이 끝난 자들은 저것이 사랑인가 묻는다​ ​ 슬픈 모양으로 생긴 위험하게 생긴 느린 비가 부족해서 파랗게 죽을 지도 모르는 저것 사랑하기에 좋도록 둥근, 바람에 대해 쓰러지기 좋은 죽기에도 좋은 저것 ​ 우리는 쓰러지기도 전에 겁이 나서 ​ 오렌지는 너무나 굳게 오렌지를 쥐고 나는 어디에도 없는 나를 쥐고 ​ 짐승처럼 나빠지고 싶은 오 두려운 여름, 거짓으로 빚어지는 둥그런 항아리 같은 저것 저것의 안을 깨뜨리며 ​ 죽었던 여름이 우리를 지나갔다 ​ ​​ ―웹진『시인광장』(2019,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