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라치다 / 함민복 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애지』2004년 가을호 사람들이 뱀을 왜 두려워하고 싫어할까요. 첫째는 독이 있다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모습이 그다.. 시를♠읽고 -수필 2010.03.25
팬티와 빤쓰 / 손현숙 팬티와 빤쓰 / 손현숙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 시를♠읽고 -수필 2010.03.23
돌탑/ 고미숙 ▲<작은 돌탑의 무심(無心)/어느 님의 기원이 담겨 있을까요> 돌탑/ 고미숙 누구의 소원일까 차곡차곡 쌓여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돌은 불안한 소원이 되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돌은 소원을 받쳐주는 소원이 되어 탑을 이루고 있다 소원이 깃들어 있지 않는 돌도 한 개 끼어 있다 돌의 마음이 .. 시를♠읽고 -수필 2010.03.23
연탄불을 갈며/홍신선 연탄불을 갈며 홍신선 컨테이너 간이함바집 뒤 공터에서 연소 막 끝난 헌 연탄재 치석 떼듯 떼어버리고 윗 것 밑으로 내려놓고 십구공탄 새 것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하나하나 생식기 맞춰 넣고 아궁이 불문 열어두면 머지않아 자웅이체가 서로 받아주고 스며들어 한통속으로 엉겨 붙듯 연탄 두 장 골.. 시를♠읽고 -수필 2010.03.22
봄/이성부 봄/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 시를♠읽고 -수필 2010.03.20
새벽의 낙관/김장호 새벽의 낙관/김장호 밤샘 야근을 끝내고 난곡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낙엽을 털어내며 새벽바람이 일어나고 버스는 봉천고개를 넘어온다 신문 배달 나간 둘째는 옷을 든든히 입었는지…… 텅 빈 버스 창가에 부르르 몸을 떨며 엉덩이를 내려 놓는다 방금 누가 앉았다 내렸을까, 연탄 크기만한 흔적이 .. 시를♠읽고 -수필 2010.03.19
내가 죽거든/크리스티나 로제티 내가 죽거든/크리스티나 로제티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셔요. 머리맡에 장미 심어 꽃 피우지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말아요. 비를 맞고 이슬에 담뿍 젖어서 다만 푸른 풀만이 자라게 하셔요. 그리고 그대가 원한다면 나를 생각해줘요. 아니, 잊으시려.. 시를♠읽고 -수필 2010.03.18
황야의 건달/고영 황야의 건달/고영 어쩌다가, 어쩌다가 몇 달에 한 번꼴로 들어가는 집 대문이 높다 용케 잊지 않고 찾아온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 쇠줄에 묶인 진돗개조차 꼬리를 흔들며 아는 체를 한다 짜식, 아직 살아 있었냐? 장모는 반야심경과 놀고 장인은 티브이랑 놀고 아내는 성경 속의 사내랑 놀고 아들놈은 .. 시를♠읽고 -수필 2010.03.17
얼굴 반찬/공광규 얼굴 반찬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 시를♠읽고 -수필 2010.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