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반탑 /복효근 쟁반탑 /복효근 탑이 춤추듯 걸어가네 5층탑이네 좁은 시장 골목을 배달 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아슬아슬 무너질 듯 양은 쟁반 옥개석 아래 사리합 같은 스텐 그릇엔 하얀 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다보탑이겠는가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밥.. 시를♠읽고 -수필 2010.04.16
더딘 사랑/이정록 더딘 사랑/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시와 사람』 2003 봄호 -자연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제3권. 국립공원 발행 무등산을 가면은 부서진 돌 파편이 내를 이루고 .. 시를♠읽고 -수필 2010.04.13
교대근무 / 엄재국 교대근무 / 엄재국 진달래 지천으로 피는 북향의 산비탈 꽃잎이 공중에 매장되고 있다 지하의 한 칸 계단을 내려서고 있는, 친구의 하관식 병반의 광부가 막장의 임무를 교대하고 있다 퇴적된 목숨들이 겹겹이 일어서는, 캄캄한 공중의 광맥들 우수수 쏟아지는 분홍빛 석탄들 누군가, 공중에 꽃을 매.. 시를♠읽고 -수필 2010.04.08
은행나무 부부/반칠환 은행나무 부부/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 시를♠읽고 -수필 2010.04.06
사랑의 지옥/유하 사랑의 지옥/유하 정신 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새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 시를♠읽고 -수필 2010.04.03
전전긍긍/안도현 전전긍긍 안도현 소쩍새는 저녁이 되면 제 울음소리를 산 아래 마을까지 내려보내준다 방문을 닫아두어도 문틈으로 울음을 얇게, 얇게 저미어 서 들이밀어준다 머리맡에 쌓아두니 간곡한 울음의 시집이 백 권이다 고맙기는 한데 나는 그에게 보내줄 게 변변찮다 내 근심 천 근은 너무 무거워 산속으.. 시를♠읽고 -수필 2010.04.02
맵고 아린 / 강정이 맵고 아린 / 강정이 1 호두까기인형이 되어 태엽감은 듯 빙글빙글 도는 발레리나 새처럼 춤추기 위해 발가락은 맵고 아리다 그녀 발가락이 불퉁불퉁 마늘뿌리다 꽃목걸이 걸고 웃는 발레리나 껍질 벗긴 한 톨 마늘이다 스포트라이트 받은 얼굴 매운내 훅- 터지니 눈부시다 2 친구야 마늘은 장터국밥에.. 시를♠읽고 -수필 2010.03.31
출석 부른다/이태선 출석 부른다/이태선 1번 한우람 정다혜 2번 동사무소 앞 황매화 3번 경비실 옆 철쭉 4번 반 지하방 창문 얼룩 폭우 그친 이튿날 북한산 밑 쌍문 1동 교실 반짝반짝 햇빛 선생님 출석 부른다 덥수룩한 어둑발이 쳐들어온다 마루 끝에 앉은 아버지 신을 벗어 턴다 소가 울지 않는다 옆집 도마질 소리 수돗 .. 시를♠읽고 -수필 2010.03.29
철새 / 감태준 철새 / 감태준 바람에 몇 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 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 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조그.. 시를♠읽고 -수필 2010.03.27
외상값 / 신천희 외상값 / 신천희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시를♠읽고 -수필 201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