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이상국 -도둑과 시인/달려라 도둑

도둑과 시인 이상국 어느 해 추석 앞집에 든 도둑이 내 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던 밤, 감식반이 와서 족적을 뜨고 나는 파출소에 나가 피해자 심문을 받았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하는 일 등을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달려라 도둑」 이라는 시를 썼다 들키는 바..

아득하면 되리라/박재삼 - 제부도/이재무

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추석 시 모음 - 김남주/노천명/이상국/김남극/맹문재/이병초/정양/송진권/이성복/이재무/천상병/이윤학

추석 무렵 김남주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

불광천 시 - 원구식/홍일표/박형준

불광천 원구식 이 개울의 주인은 아마도 흰뺨검둥오리일 것이다. 나는 사람이 아둔해서 최근에야 겨우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녀석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의 물과 물고기들을 먹고 새끼들을 낳으며 멋대로 날고 헤엄을 치고 아주 느긋하게 목욕을 해왔던 것이다. ..

물수제비 시 모음 - 강인한/권혁웅/이홍섭/이가림/정성수 외...

빈 손의 기억 강인한 내가 가만히 손에 집어 든 이 돌을 낳은 것은 강물이었으리 둥글고 납작한 이 돌에서 어떤 마음이 읽힌다 견고한 어둠 속에서 파닥거리는 알 수 없는 비상의 힘을 나는 느낀다 내 손 안에서 숨쉬는 알 둥우리에서 막 꺼낸 피 묻은 달걀처럼 이 속에서 눈 뜨는 보석 같..

등잔 - 신달자/도종환

등잔 ― 신달자(1943∼ )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

기우러짐에 대하여/문숙 - 기대다/안명옥

기울어짐에 대하여 문숙 친구에게 세상 살맛이 없다고 하자 사는 일이 채우고 비우기 아니냐며 조금만 기울어져 보란다 생각해보니 옳은 말이다 노처녀였던 그 친구도 폭탄주를 마시고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짝을 만들었고 내가 두 아이 엄마가 된 것도 뻣뻣하던 내 몸이 남편에게..

사랑의 지옥/유하 - 꽃의 지옥/고영

사랑의 지옥 유하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새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

부처님 시 모음 -강준철/김애리나/임영조/이홍섭/김창완/여한경/권정우/함민복/이재무...외

부처님 시 모음 - 안테나 위로 올라간 부처님 강준철 &#8203; 부처님이 법당이 답답하여 안마당을 거닐다가 물 한바가지를 마시고 안테나 위로 날아 올라갔다 수만 가정의 안방으로 부처님이 송신되었다. 그러나 전파 장애로 아무도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 갈참나무에 올라가 목이 아프게 ..

아버지 시 모음 - 김현승/박목월/천수호/김인욱/강신용/이대흠 외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